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많이 힘들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중국 고객에 의존하던 성형외과는 매출이 반의반 토막이 났다고 한다. 필자의 피부과도 신천지 사태 이후 3월 말까지는 예약의 절반이 취소됐다. 다행히 지난달 초부터 확진자 수가 줄어들면서 예년의 80% 수준까지 회복됐다. 그러나 지난주 의대 동기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비인후과는 현재도 개점휴업 상태라고 들었다. 병원 감염이 우려돼 환자가 아파도 안 오는 이유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다 보니 감기 환자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원래 3월은 B형 독감이 도는 시기인데 올해는 아예 유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B형 독감의 특효약인 타미플루도 거의 판매가 안 됐다는 후문이다. 그러고 보니 감기를 달고 사는 필자도 마스크를 끼고 진료를 시작한 올해에는 지금까지 감기 한 번 안 걸렸고 우리 병원에서도 감기에 걸린 직원이 없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자신의 보호는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당연한 에티켓으로 자리 잡으면서 마스크 수급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KF80·KF94 등 방역용 마스크에 주로 사용되는 MB(melt blown)필터는 그동안 부가가치가 낮아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생산을 하지 않았고 중국에서 대부분 생산했다. 마스크 5부제, 공적 마스크 수급 등의 조치가 있었던 이유다. 다행히 지난달부터 정부의 요청으로 ㈜도레이에서 기저귀용 MB필터를 마스크용으로 바꿔 하루 650만 장 분량을 생산하게 됐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MB필터는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다. 폴리프로필렌을 고온으로 녹여서 작은 노즐을 통해 뿜어내면 가는 실 형태로 나온다. 이것을 롤러로 눌러 천 형태로 만든 후 정전기를 띠게 하면 방역용 마스크 KF80·KF94에 끼우는 필터가 된다. 그런데 MB필터는 정전기 원리로 차단하므로 물에 젖으면 차단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최근에 KAIST에서 실험한 나노필터 마스크는 20번을 빨아 써도 성능이 유지된다고 한다. 나노필터는 페트병 원료인 PET(polyethylene terephtalate)로 만든다. PET를 전기방사 원리로 100~500㎚의 나노급 가는 실로 만들어 부직포에 뿌리면 기존 필터보다 훨씬 촘촘한 형태의 필터가 된다. 정전기와 무관하게 분진과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빨아서 쓸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빨아 쓰는 이슈보다는 사람의 날숨에는 수분이 포함돼 있어 장시간 사용하면 MB필터는 정전기가 약해져 성능이 떨어지는 데 비해 나노필터는 괜찮다는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나노필터는 가볍고 좋은 통기성으로 생리대나 아웃도어 제품에도 사용될 정도다. 기존 MB필터 마스크에 비해 훨씬 가볍게 만들 수 있어 여름에 사용하기 좋다. 이런 소재의 참신성을 이유로 월 1억 장 이상의 나노필터 마스크를 생산하는 ㈜톱텍의 마스크가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을 뿐 아니라 유럽 CE 인증까지 앞두고 있다니 진단키트에 이은 K-방역의 좋은 사례라 하겠다.
그럼에도 나노 마스크는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못 받아 공산품 마스크로 유통되고 있다. 나노섬유가 신소재이기 때문에 작은 나노급 섬유 입자들이 폐 깊숙이 들어가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은지, PET와 함께 사용한 PVDF(polyvinylidene difluoride)의 잔존 독성은 없는지 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PVDF는 미국 FDA에서도 오븐이나 베이커리 등 식품 제조장비에 허용하고 있는 안전한 물질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가습기 첨가제로 신소재 허가에 대해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국과 유럽이 허가를 내줄 때는 그만큼 안전성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마스크 대란을 빨리 끝내려면 식약처의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