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4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이사회의 입장문을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오승현기자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가 확산되면서 정부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다. 기부금과 국고보조금을 정의연이 허술하게 사용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정의연과 같은 시민단체들은 기부금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의 관리를 받도록 돼 있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연간 기부금을 1,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모금하려면 모집·사용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장에 등록해야 하며, 해당 금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에 따르면 2017~2019년 동안 지난해를 제외하고 매년 모금액이 10억원을 넘긴 정의연의 경우 기부금 집행과 관련해 행안부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돼 있는 것이다. 특히 기부금품법은 시민단체가 관련 조항을 위반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기부금품법이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는 것이다. 정의연의 경우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 개인 계좌로 후원금을 모집하고 실제 사용 금액과 사후 공시 금액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등 기부금 모금과 사용에서 모두 유용 의혹을 받고 있지만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회계 부정 의혹을 폭로하기 전까지 행안부는 관련 사안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 관계자는 “법에 따라 시민단체의 모집 목표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연 1회 검사를 하고 있다”며 “정의연의 경우 검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단체의 연 모금액이 50억원 이하인 경우를 고려하면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행안부가 별도 검사를 할 필요성이 높은데 정의연 사태처럼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 사후약방문 형식으로만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시민단체 회계 투명성 관리와 관련해서는 세무당국도 책임을 피하기가 힘들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에 따르면 시민단체를 포함한 공익법인은 기부금 모집 및 지출 내역 등을 국세청에 매년 공시하도록 돼 있다. 해당 법은 국세청이 결산 내역을 검토해 오류가 발견되면 재공시하도록 지시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가산세도 물릴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기부금품법과 마찬가지로 당국의 별도 검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현행 체제 하에서는 시민단체들이 허술한 재무제표를 국세청에 공시해도 발각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정의연이 국고보조금을 누락·축소하는 방식으로 공시한 것과 관련해서는 예산 집행 부처의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에 따르면 정의연은 2017~2018년 받은 국고보조금을 운용성과표에 전액 미공시했고 2019년에는 축소 공시했다. 해당 예산을 집행한 여성가족부는 이정옥 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직접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해 국민들께 사과드린다”며 문제를 인정했다. 정의연은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시절부터 2016년 이후 여가부 외에 서울시, 교육부 등으로부터 13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