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의 자산운용사 구겐하임의 스콧 마이너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회사채 매입 조치에 우려를 표하며 “연준의 이번 결정은 기업의 부실에 대한 사회주의적 접근이다. 미국은 이제 다시 시장자본주의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지하다시피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연준은 5개의 대규모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 대상은 국채와 지방채, MBS, 회사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매입 규모는 사실상 무제한적이다. 이 조치가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중앙은행의 선을 넘는 개입이 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보다 더 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금융시장이 예전의 건전한 시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 난망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마이너드 CIO는 추가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회사채 시장은 무너지기엔 너무 큰 시장이 되어버렸다”
마치 예전 한국경제의 대마불사 논리를 연상시키는 말이지만 엄밀히 말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지금 치르지 못한 대가를 결국은 지불해야 할 것이다. 다만 그전까지 연준은 무엇이든 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아직은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연준은 결국 주식시장에도 개입하게 될 것이다. 중앙은행이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주식을 매입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방법이 전혀 생소한 방법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이미 2010년부터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증시에 유동성을 쏟아 붓고 있다. 연준이 만들어 가고있는 이 시장에서 우리가 직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자산의 가격을 측정하는데 있어 펀더멘털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제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증시하락 보다는 차라리 가격버블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우리는 관성적으로 기업의 주가는 건전한 수익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글로벌 자산시장에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이런 전통적 원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잡아 가는 상황이다. 올 상반기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최악의 경기부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되려 급등세를 이어가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시중에 돈이 흘러 넘친다. 이 유동성의 바다가 한동안은 시장의 법칙을 만들어갈 것이다.
모순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경기가 부진하면 그 시점은 오히려 투자기회이다. 연준은 이제 물러서기엔 너무 많이 나섰고 앞으로도 많은 화폐를 찍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유동성의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는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대등하게 배분한 포트폴리오이다. 또한 이 포트폴리오는 개별 종목이 아닌 인덱스를 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분석이 의미가 없는 시장에서 액티브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마치 기마병을 이끌고 현대전에 뛰어드는 것만큼 비효율적이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함에 있어 선진증시와 선진국 채권을 두 축으로 할 것을 권한다. 글로벌 증시는 당분간 선진국을 중심으로 상승할 개연성이 크다. 특히 미국 증시는 유동성의 근원임과 동시에 펀더멘털 측면에서도 가장 안정적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증시는 향후 높은 불확실성 속에 불규칙적인 급등락을 보일 우려가 있고 이때 선진국채가 이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상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추가하자면 향후 귀금속 시장에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한다. 귀금속 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 가장 저평가된 시장이고 또한 새로운 대 유동성 장세를 앞두고 가장 기대할 만한 시장이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지난 2011년을 넘어서는 금, 은의 가격급등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유동성 장세에서는 투자를 회피할 이유가 없다. 최악의 경기상황에서 자산가격이 상승할 리 없다는 판단이 합리적으로 보이겠지만 유동성이 자산가격을 결정한다는 사실 또한 합리적이다. 다만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에 고르게 투자해 리스크에 대한 균형을 맞출 수만 있다면 지금은 매우 좋은 투자환경이라 할 수 있다. 앞서도 얘기했듯 언젠가는 이 손쉬운 시장부양의 대가를 치르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먼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