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홀서 '각본 없는 무승부'...세계 1위 라이벌답네

[고진영 vs 박성현...현대카드 슈퍼매치서 격돌]
이벤트대회 무색하게 치열한 경쟁
고진영 야디지북, 박성현은 골프화
태극마크 새기고 똑같이 5,000만원씩 기부

고진영(왼쪽)과 박성현이 24일 현대카드 슈퍼매치 경기 후 ‘셀카’를 찍고 있다. 박성현은 “서로 경기하기 바빠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대신 (고)진영이가 집들이에 초대해줬다”며 웃었다. /사진제공=현대카드

15번홀 그린에서의 경기 모습. /사진제공=현대카드

1번홀 티샷 하는 고진영. /사진제공=현대카드

1번홀 티샷 하는 박성현. /사진제공=현대카드

“언니랑 하루 더 좋은 추억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치려고요. 언니가 너무 무섭게 안 치면 좋겠어요.”(고진영)

“이벤트대회이기 때문에 (고)진영이랑 대화도 많이 하면서 편안하게 치고 싶습니다.”(박성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승부가 시작되자 ‘이벤트’라는 대회 성격이 무색해졌다. 세계 최강 한국여자골프군단의 투톱인 고진영(25)과 박성현(27·이상 솔레어)이 불꽃 튀는 ‘장군멍군’ 버디쇼로 골프팬들의 갈증을 씻어줬다.

24일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에서 무관중으로 열린 ‘현대카드 슈퍼매치 고진영 VS 박성현’ 스킨스게임(홀별로 상금을 걸고 총 상금액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 경기 전 인터뷰에서 “상금을 반반씩 가져가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던 둘은 막상 티잉 구역에 오르자 정규대회처럼 치열하게 싸웠다. 단둘의 대결이었는데도 경기 시간이 4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실전 감각이 떨어진 탓에 종종 퍼트 실수에 고개를 숙이기도 한 둘은 홀을 거듭할수록 진가를 발휘했다.


“편하게 치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상금을 반반씩 나누겠다는 말은 거짓말처럼 맞아떨어졌다. “마치 짜고 경기한 것 같다”는 박지은 해설위원의 말처럼 둘은 총상금 1억원을 5,000만원씩 나눠 각자의 기부처에 전달하게 됐다.

전반 9홀에서 나란히 4개씩 스킨을 가져가며 팽팽히 맞선 가운데 고진영이 13번홀(파4) 버디로 한꺼번에 2,400만원을 따내며 승기를 잡은 듯했다. 보너스 1,000만원을 거는 찬스 카드를 박성현이 내밀었지만 정작 상금은 고진영이 챙겨 누적상금 4,000만원 대 1,200만원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박성현은 14번과 15번홀을 이기면서 추격에 불을 댕겼다. 티샷으로 최소 240m를 날려야 벙커를 넘길 수 있는 14번홀(파5)에서는 벙커를 훌쩍 넘겨 페어웨이를 지킨 끝에 손쉽게 버디를 잡았다. 고진영이 찬스 카드를 꺼낸 17번홀(파3)마저 중거리 버디로 따내면서 박성현은 한 번에 2,600만원을 획득했다. 누적상금 5,000만원 대 4,000만원으로 역전해 최소 무승부를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고진영이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5m 버디 퍼트로 이 홀에 걸린 1,000만원을 따내면서 결국 무승부를 기록했다. 획득한 스킨 수에서는 고진영이 10대8, 버디 수에서는 박성현이 6대4로 앞섰다.

경기 후 고진영은 “초반 이후 언니가 계속 버디를 하자 저도 승리욕이 생기더라. 정규대회 챔피언 조 경기보다 부담스러운 한판이었다”고 말했다. 박성현은 “신기하게 서로 사이좋게 최고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샷이나 퍼트가 지난주(KLPGA 챔피언십 컷 탈락)보다 확실히 만족스러운 경기였다”고 밝혔다. 둘은 2014시즌부터 정규투어에서 경쟁을 시작했는데 고진영이 보다 나은 성적을 낸 횟수가 조금 더 많았다. 공식 대회 전적으로 따지면 58승5무51패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답게 고진영은 야디지북(코스 정보를 담은 책자)에, 박성현은 골프화에 각각 태극마크를 새기고 경기했다. LPGA 투어 합산 승수가 13승(박성현 7승·고진영 6승)인 둘은 지난해 봄부터 세계랭킹 1위를 다투고 있기도 하다. 현재 랭킹은 고진영이 1위, 박성현은 3위다.

LPGA 투어가 일러야 7월에 재개될 예정인 가운데 고진영과 박성현은 국내 훈련을 이어가며 KLPGA 투어 대회 출전을 고민할 예정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휴식기 동안 고진영은 자전거·요리·영어공부에 빠졌다고 한다. 지난 시즌 말 심해졌던 어깨 통증이 거의 가셨다는 박성현은 “샷 연습하고 운동하고 연습 라운드하면서 제 골프와 생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인천=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