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천숲은 시내 가까이 있는 숲이라 그저 오밀조밀한 숲이려니 했는데 규모가 작지 않았다. 천연기념물 514호로 지정된 만큼 넓이가 상당하다.
영덕은 해마다 한 번씩 가는 편이지만 영덕 대게의 유명세 때문에 주로 바닷가와 어시장 위주로 취재를 했다. 삼사해상공원이나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은 이미 여러 차례 섭렵했던 터라 이번에는 영덕의 산과 계곡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영덕을 찾을 때마다 비가 왔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쾌청해 산을 오르기에도 좋았다.
먼저 발길이 머문 곳은 영덕군 남정면 도천리에 위치한 도천숲. 시내 가까이 있는 숲이라 그저 오밀조밀한 숲이려니 했는데 규모가 작지 않았다. 천연기념물 514호로 지정된 만큼 넓이가 상당했다. 도천숲은 400년 전 마을이 생길 때 조성된 숲으로 ‘도천(道川)’이라는 이름은 삼국시대 이후 ‘역로를 따라 내가 흐른 마을’이라는 의미의 ‘길내’ 혹은 ‘질내’로 불리다 한자 지명인 도천으로 굳어졌다.
숲은 앞산의 뱀머리 형상이 마을을 위협하므로 이를 막기 위한 비보(裨補·모자라는 것을 보충함)풍수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한때는 숲의 규모가 산에서부터 하천을 따라 남쪽 국사당까지 이어질 정도로 방대했지만 화재와 경작 등으로 지금의 규모로 줄어들었다. 박문태 문화관광해설사는 “숲 안에는 대마를 땅속 구덩이에서 삶아 옷을 만들던 ‘삼굿’이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며 “숲 안의 당집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대보름에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300~40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들이 밀집돼 있어 낮에도 어두침침할 정도며 숲에 들어가면 시원한 기운이 감돈다.
옥계계곡 왼편 바데산은 침수정을 비롯한 38경의 비경을 품고 있다.
숲을 나와 향한 곳은 옥계계곡.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동대산이, 왼쪽에는 바데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동대산은 요새 같은 긴 계곡과 기암괴석, 맑고 깨끗한 소(沼)와 폭포들이 이어져 원시와 청정의 비경을 만끽할 수 있다. 계곡 왼편 바데산은 옥계계곡의 침수정을 비롯한 38경의 비경을 품고 있다. 뒤쪽 계곡으로는 경방골·물침이골을 끼고 있어 곳곳마다 소·암반·폭포 등이 즐비하다. 삼천리 방방곡곡 좋다는 계곡을 섭렵했지만 영덕에 이런 계곡이 숨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해 오래 머물렀다.
박 해설사는 “조선 정조 때 경주 손씨 손성일이 이곳에 와서 절경에 반해 38경을 정했다”며 “침수정과 귀면암·병풍바위가 이어지는 팔각산은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데다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고 송이가 많이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옥계계속 왼편 바데산은 침수정을 비롯한 38경의 비경을 품고 있다.
옥계계곡의 시작은 귀면암부터인데 아쉽게도 38경 전부는 표시가 돼 있지 않은 상태다. 다시 말해 계곡을 따라 올라가도 어디가 몇 경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박 해설사에 따르면 영덕문화원이 하나하나 표지석을 세우고 스토리텔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그에 앞서 자료발굴에 착수한 상태다. 등산로는 귀면암 초입에서 시작하는데 죽장하옥~물침이골~동대산~곰바위~바데산까지 12.3㎞ 구간이다.
옥계계곡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팔각산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옥계계곡 서쪽에 있는 팔각산은 8개의 바위 봉우리가 구름 쌓인 하늘을 향해 첩첩이 솟아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의 높이만 보면 다소 과장이 섞인 설명이지만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옥계계곡 서쪽 팔각산에는 호박소라는 넓은 웅덩이가 자리하고 있다.
일단 입간판 하나 덩그러니 서 있는 초입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산길로 들어서니 사람이라고는 기자와 박 해설사 둘뿐이다. 그래도 산이 높지는 않아 입구에서 8봉까지 2시간이면 올라가는데 등산로를 따라 계곡이 흐르고 있어 산길이 심심치 않다. 30분이면 호박소라는 웅덩이에 다다르는데 이 소는 쟁반처럼 널찍한데다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수를 받아내 맑은 물이 넘칠 듯 고여 있다. 푸른 물이 꽤 깊어 보이는 이곳은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면 하트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일대는 반딧불이가 자생해 한밤이면 이 곤충들의 군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박 해설사는 “이곳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 방송이나 신문에 나온 적이 없다”고 했다. 비탈진 바위에는 누가 해놓았는지 발을 딛고 오를 수 있도록 계단처럼 돌을 깎아 놓았지만 자세히 보니 깎아 놓은 바위가 닳지 않은 채로 날이 서 있어 인적이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사진(영덕)=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