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기업의 연구개발(R&D) 축소를 불러온 것은 물론 정부출연연구원과 대학의 연구실에까지 불똥을 튀기고 있다. 만약 이런 식으로 1~2개월 지나면 기업·대학·출연연 등 국가 R&D의 3각축이 삐거덕거리며 미래 성장동력 훼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27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급속히 확산된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출연연에 대한 정부의 출연금이 당초 계획보다 절반가량이나 감축돼 지급되면서 연구장비 발주가 하반기로 늦춰졌다. 출연금은 인건비 등 경상비 외 연구비에 쓰인다. 여기에 기업들이 대학과 출연연에 제안하는 용역과제를 줄이거나 계약을 미루고 있다. 대면 문화 기피로 교수들이 수행하고 있는 정부 R&D 과제에 대한 연차평가도 미뤄지며 연구비 집행도 그만큼 순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선 출연연의 경우 대부분 연간 예산에서 정부 출연금이 50% 안팎의 비중을 차지하는데 지난 3개월간 이 출연금이 당초 계획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로 인해 기관의 경상운영비 삭감은 물론 연구비도 장비 발주는 미루되 연구에 꼭 필요한 소모품은 구입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외부 연구용역 발주 등 신규 예산 집행을 모두 중단한 곳도 나오고 있다. 출연연 원장 A씨는 “이런 상황이 한두 달 더 지속되면 연구에 적지 않은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심지어 어떤 출연연은 임금 체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4년 S연구원, 2017년 말 K연구원은 각각 연구용역 수주 부진과 연구적립금 운용수익 급감으로 임금을 체불한 적이 있다.
용역과제 축소 등 기업투자도 뚝
“지속땐 임금체불까지 이어질것”
이 과정에서 정부 출연금 비중이 높은 출연연의 애로가 크다. 출연연의 경우 예산의 절반가량을 정부 출연금으로, 나머지는 정부와 기업의 R&D 연구용역 과제를 수행해 충당하는데 이마저 여의치 않다. 기업 과제가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이다. 출연연 원장 B씨는 “꼭 필요하고 급한 예산 위주로 집행하고 있는데 머잖아 연구비에도 일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예년에도 예산을 절약해 2~3%는 반납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학에서는 산학협력 차질이나 정부 연구비 집행 지연 등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해외 학술행사, 전시회 등 국제협력을 위한 출장이 다 막혔는데 하반기에 예산집행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기업들의 용역과제도 계약이 한 두 달씩 늦춰지거나 일부 줄어드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대학의 한 교수는 “3년짜리 R&D 과제라면 연차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과제를 발주한 한국연구재단이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각 기관에서 단계별 평가를 제때 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연구비 집행도 그만큼 늦춰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기업이나 출연연·대학 모두 국제 공동연구에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출연연 원장 D씨는 “코로나19로 인해 국제 공동연구가 제대로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재난지원금 조달 등을 위해 정부가 R&D 예산을 깎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며 “민간에서 R&D 투자가 줄고 있는 데 맞춰 정부 부문에서 떠받쳐줘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R&D가 위축되는 것은 ‘농사지을 씨앗을 먹어치우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R&D 강화” 외치지만
“미래 먹거리 훼손 불가피” 우려
기업의 경우에도 바이오·헬스케어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소재·부품·장비 기업이나 정보기술(IT) 벤처·스타트업은 물론 자동차·조선·해운·철강·건설·석유화학 등 기존 주력 산업까지 R&D가 위축되고 있다. 바이러스를 잡는 축광식 광촉매 신기술을 선보인 김승진 에이피씨테크 대표는 “정부가 올해 출연연과 대학·기업에 지원하기로 한 24조원을 차질없이 신속히 집행하며 기초·응용·개발연구를 아우르는 산학연 융합연구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금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출연금 지급에 관해 시기를 조절하고 있으나 연내 예정된 출연금 지급은 모두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이 출연금은 올해 24조원의 정부 R&D 예산에 포함돼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은 “정부와 각 기관에서 고통분담 차원에서 지출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데 R&D가 위축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정부의 R&D 예산 24조원은 지난해보다 18% 늘어난 것으로, 계획대로 집행할 것”이라며 “내년 R&D 예산은 올해보다 2조원가량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