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090430)그룹이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성자산을 바탕으로 인수·합병(M&A)과 지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사드 사태로 꺾여 버린 성장세가 쉽사리 회복되지 못 하자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사업 영토를 확대하겠다는 조치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전략적 지분 투자와 M&A를 확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1·4분기에는 호주 럭셔리 화장품 기업 래셔널그룹 지분 49%를 약 500억원을 인수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의미 있는 규모의 M&A에 나선 건 2011년 향수브랜드 아닉구딸 이후 9년만에 처음이다. 벤처투자도 늘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내 신생 벤처캐피탈(VC)인 TBT가 조성한 펀드에 약 100억원을 출자했고 미국 비건 화장품 브랜드인 밀크메이크업 지분 4%를 취득하기도 했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아모레퍼시픽은 외부기업에 대한 투자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보다는 K-뷰티 열풍에 올라타 사세를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2011년 3조 585억원이었던 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G(002790))의 매출은 5년 만에 6조 6,976억원으로 2배 이상 폭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4,347억원에서 1조 828억원으로 149%나 뛰었다. 영업 현금흐름이 워낙 뛰어난 덕에 매년 수천억원의 현금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사드사태와 로드샵 브랜드들의 성장세가 꺾이자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해 아모레G의 매출액은 6조 2,843억원으로 3년전보다 오히려 6% 줄었다. 20~30%에 달하던 영업이익 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2017년에는 만년 2위였던 LG생활건강에 매출 1위 자리를 내준 뒤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아모레G의 매출액은 LG생활건강의 67% 수준이다. LG생활건강은 실적의 절반을 담당하는 생활용품·음료 사업부가 중국 화장품 매출이 빠진 자리를 메웠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은 적극적인 M&A로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왔다. 2007년 코카콜라를 시작으로 다이아몬드샘물·더페이스샵·해태음료를 비롯해 올 초에는 1,920억원을 주고 피지오겔 사업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글로벌 1위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그룹 역시 중국 마스크팩 제조업체인 매직과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 화장품 기업 스타일난다를 인수하면서 현지에서 장악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으로서는 신성장동력 확보와 중국에 쏠린 매출처 다변화가 시급하다. 최근 북미 위주로 투자를 집행한 것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투자 실탄도 두둑하다. 지난 1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은 약 1조 3,000억원에 달한다. 사옥이었던 성암빌딩을 매각해 확보한 1,520억원을 더하면 1조 5,000억원에 가깝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자본시장에 잘 등장하지 않았던 현금부자 기업”이라며 “경영권 인수와 같은 적극적인 M&A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여러 기업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며 차세대 동력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정기자 about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