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꼼수로 흰돌을 검은돌로 바꾸는게 정치판…난 '이물질' 이었다"

■국회 떠나는 國手 조훈현 미래통합당 의원
정치는 입으로, 바둑은 머리로 싸워…일찌감치 불출마 결심
보수야당 총선 참패, 리더 부재로 분열·민심 못 잡은 탓
거대여당, 쉽게 잡힐 대마가 아냐…野 복기 제대로 해야

29일로 국회의원 금배지를 떼는 국수 조훈현 의원은 “정치인들이 자신을 조금 내려놓고 욕심을 덜 부려야 좋은 정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기자


국수(國手) 조훈현의 ‘정치 대국’이 막을 내렸다. 반상(盤上)의 황제로 바둑 외길 인생을 걷던 조 국수는 4년 동안 여의도 정치를 경험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정확히 29일로 20대 국회의원 금배지를 뗀다. 바둑밖에 몰랐던 그로서는 외도라면 외도다. 그는 스스로 ‘어쩌다’ 국회의원이 됐다고 했다. 국수라고 불러야 할지, 의원으로 불러야 할지 망설이다 질문에 따라 호칭을 섞어 썼다. 이 시대 최고의 승부사는 자신이 경험한 정치를 어떻게 복기할까. 국수 조훈현 미래통합당 의원을 자택 인근의 한 카페에서 지난 26일 만났다. 그는 열흘 전 일찌감치 국회의원실에서 짐을 쌌다고 했다.

-의원실 짐도 정리했는데 바둑은 좀 두는지.

△이곳저곳 대국 구경은 하지만 직접 두지는 않는다. 아니 둘 수가 없더라.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더라. 성적 내기가 쉽지 않다.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4년 동안 공백기였다. 옛 기력이 나오기 어렵고 그래서 바둑 두는 게 괴로운 거다.

-그래도 다음달 ‘바둑 여제’ 최정 9단(세계 랭킹 1위)과 대국하는데.

△시합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벤트 대국이다. 행사 때는 몰라도 시합 나가기는…. 그래서 안 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바둑팬들이 아쉬워할 텐데.

△팬들의 기대야 그렇지만…. 나이도 많고 실력도 달리고 공백기도 있고. 모든 게 악조건이다. 4년 전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고 열정도 떨어졌다. 간혹 이벤트와 행사 대국은 할 거다. 명색이 프로라면 1~2등을 다퉈야 하는데…. 현역에서 떠날 때가 됐지 않았나 싶다.

1989년 9월 제1회 잉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를 제패한 조훈현 9단의 카퍼레이드(김포공항~한국기원) 모습. 단기필마로 출전한 조 국수의 우승으로 한국은 세계 바둑계의 변방에서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사진 제공=한국기원

1994년 서울경제 주최로 열린 제5회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조훈현 국수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과 대국을 끝내고 복기하고 있다. 조 국수는 3승1패로 타이틀을 차지했다.

-바둑에는 정년이 없지 않나.

△4년 전 랭킹이 100위 정도(한국기원 확인 결과 65위)였다. 지금은 200~300위 정도(한국기원 추정 70위권) 되지 않을까.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은 머리부터 안 돌아간다. 인공지능(AI)이 엄청난 계산을 하지 않나. 기계는 진화하지만 사람은 퇴화한다. 들어오는 것은 없고 잊어버리는 게 많다. 꿈과 현실은 다르다.

-의원들과 종종 바둑을 뒀나. 바둑판이 의원실에도 있다는데.

△의원실에서는 두지 않았다. 국회에는 기우회가 있다. 한중일 의원 친선 바둑대회도 있고. 원유철 의원과 많이 뒀고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과도 뒀다.

-의원들의 기풍은 어떤가.

△싸움 바둑이 많다. 유인태 사무총장, 이인제 전 의원 등이 그렇다. 원유철 의원은 순하게 둔다.

-곧 국회의원 배지를 떼는데 소감은.

△보통 임기가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시원할 뿐이지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그렇다.

-정치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는 말인가.

△안 맞지. 도무지 못 따라가겠더라. 내 상식과는 너무 다르다. 맞춰야 하는데도 못 맞추겠더라.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치할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상식과 다르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육지동물한테 바다에 살라는 격이다. 정치판은 이른바 ‘물’이 다르더라. 이태원에서 머리 희끗하면 입장불가 아닌가. 정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물질’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건가.

△국회에 오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4년이 하루빨리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2년차 때 (불출마를) 구체화한 것 같다. 국회 2년차면 계속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다.

조훈현 9단이 2016년 3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입당원서를 제출한 뒤 김무성·서청원 최고위원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입성 자체가 패착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니다. 후회하지 않는다. 일종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단지 적성에 안 맞았을 뿐이었다. 나는 바둑계를 대표한 비례대표다. 내게는 숙제 같은 게 있다. 바둑진흥법 제정이 내 일이었다. 바둑계의 20여년 숙원이었다.

-바둑진흥법 제정안은 첫해에 발의했지만 2년 뒤 통과됐는데.

△쉽게 되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무척 걸렸다. 의원들이 다들 도와주겠다고 하고서는 상임위원회에서는 입장을 바꾸더라. 국가 재정 문제도 있고 프로기사 편중 법안이라며 ‘악법’이라고 한 분도 있었다. 그런 게 아닌데…. 마음고생이 심했다. 부족하지만 내 숙제는 다 했다고 본다.

-국회의원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의정활동을 복기한다면.

△내가 정치 하수 아닌가. 잘할 수가 없었지. 잘하기도 힘들고. 정치에 꿈과 뜻이 있다면 몰라도. 어쩌다 국회의원이 됐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나.


△내 뜻과 맞지 않아서다. 정치는 아군과 적군, 흑백으로 나뉜다. 적군에서도 좋고 맞는 얘기가 나올 수 있지 않나. 그래도 무조건 반대해야 하고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 이건 이율배반이다. 흰 돌인데도 무슨 꼼수를 부려서라도 검은 돌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때가 묻고 하니 검은 것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이다.

-바둑과 정치가 승부의 세계라는 점에서 닮은 것 같은데.

△승부가 갈리고 싸우는 것은 같다. 그런데 바둑은 머리로 싸우지만 여기는 입으로 싸운다. 세월이 지나면 흰 것도 검게 된다고.

-다른 점을 꼽는다면.

△바둑은 타협하고 제 갈 길을 간다. 좋은 점을 서로 인정하고 해야 하는데…. 뭐라고 꼬집어 이야기하기가…. 하여튼 별세계다. 정치 세계는 뭔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조훈현 의원이 2016년 11월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사태’ 관련 새누리당 초선 의원 회의에서 괴로운 듯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정치가 왜 희망을 주지 못하고 불신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말은 나라를 위하고 당을 위한다지만 따지고 보면 다들 지역구 챙기기 바쁘다. 지역구 이익을 해치면 서로 원수지간이 된다. 일단 내 것부터 지키고 남의 것 빼앗고…. 지역구 챙기기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바른 정치, 좋은 정치는 무엇인가.

△자신을 조금 내려놓는 것, 욕심을 조금 버리는 것이다. 정치에선 손해도 보고 그래야 한다.

-미래통합당에서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으로 갔다. 이건 정석이 아닌데, 왜 수락했는지.

△저쪽이 먼저 반칙하니…. 코너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물지 않나. 그 얘기를 하자면 길다. 당에서 요청하니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했다. 만약 4년을 더 해야 한다면 안 갔을 것이다. 2개월 동안 4년 할 것을 다 한 느낌이었다.

-보수야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정치 하수가 보기에도 불안불안한데 당내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하더라. 지도부가 위기감이 없는 것 같다. 위기 때는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데…. 민심을 잡아야지. 부동층 40%가량이 우리 편이라고 착각하더라. 바둑 중반에는 승부를 예감하고 승부수를 던진다. 한 집 차이든 열 집 차이든 지는 건 마찬가지라서 강수를 두지. 그런데 제대로 수 읽기도 하지 않았다. 총선 후 복기 과정도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졌다고들 하는데 이건 제대로 된 복기가 아니다. 막말도 패인으로 거론되지만 막말은 저쪽(여당)도 심했다.

-보수야당의 문제가 뭔가.

△단합이 안 되고 분열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리더가 있어야 하는데 인물이 없다. 당 대표가 말해도 따라가지 않는다. 5선·6선 의원이 있으면 뭐하나. ‘네가 뭔데’하고 들이댄다. 통합당에 리더가 없는 게 불행이다.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으로 이적해 미래한국당 사무총장을 맡은 조훈현 의원이 지난 3월19일 비례대표 명단 부결 파동과 관련해 지도부 총사퇴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가동되는데.

△누군가는 (당 수습을) 해야 하지만…. 정치를 잘 모르지만 (그분은) 연세가 너무 많아서…. 나이만 봐서는 안 되지만 비대위원장으로 적합한지 모르겠다.

-리더로 보기 어렵다는 말인가.

△(김 위원장은) 이 당 저 당을 오갔다. 반대파가 있기 마련이지만 반대가 이리도 많은데 리더라고 할 수 있겠나. 아니라고 본다.

-보수야당이 잃어버린 집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물이 없는 게 불운이다. 그러니 분열하고 싸움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유지는 하겠지만 실지를 회복할 수 있겠나. 현상 유지하기도 바쁘지. 반성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민심을 못 잡았으니 졌지 않았나. 자신이 손해 보더라도 당 전체적으로 이익이면 따라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여당은 177석의 대마가 됐다. 어떨 것 같은가. 종종 대마도 잡히지 않나.

△쉽게 잡힐 상황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대마 사냥은커녕 통합당이 도망 다니기에도 벅차다. 내가 보기에 이쪽이 죽게 생겼다. 그래서 민심이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거다. 아직도 민심이 우리 편이라고 착각하니 답답하다. 반성을 제대로 하면 희망이 있을 것이고, 그것도 안 된다면 여당의 실수만 기다릴 수밖에.

/권구찬선임기자 chans@sedaily.com

국수 조훈현 의원





1953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세계 최연소(9세 7개월)로 프로 바둑기사에 입문했다. 1963년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세고에 겐사쿠 문하에서 바둑을 배웠다. 1974년 최고위전에서 첫 타이틀을 차지한 뒤 1980·1982·1986년 국내 전 기전을 석권했다. 세계 최다승(1,949승), 세계 최다 우승(160회), 단일 기전 세계 최다 연속 우승(패왕전 16연패) 등의 ‘불멸의 기록’ 보유자다. 1982년 국내 최초로 입신(入神)의 경지라는 9단에 올랐다. 1989년 대만 기업인 잉창치가 주최한 세계 최대 대회인 제1회 잉씨배(應昌期杯) 패권을 차지한 공로로 그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서울경제가 주최한 세계 3대 기전인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한 기록도 있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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