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부활' 딴지거는 서울시

송현동부지 매각, 실탄 마련계획에
市, 시장가 3분의1에 매입 제안
대한항공, 적극대응 못한채 냉가슴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권욱기자

한진그룹의 자구안이 서울시에 발목이 잡혔다. 매각 대상 유휴자산 중 가장 높은 가치를 평가 받았던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서울시가 공원 부지로 지정해 헐값에 사들이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9월까지 자구안을 통해 2조원을 마련해야 하는 대한항공(003490)은 상대가 서울시다 보니 속으로 부글부글 끓지만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공원으로 바꿀 경우 부지 매각가격(5,000억원)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뿐 아니라 대한항공의 자구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아울러 서울시가 개발을 불허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제3자가 개발을 목적으로 한 부지 매입도 어렵게 된다. 내년 말까지 대한항공에 2조원의 자본 확충을 요구하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의 입장도 곤혹스럽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명백한 사유지임에도 서울시가 공원화 계획을 밀어붙여 대한항공의 매각 계획을 방해하고 가격을 떨어뜨리고자 하는 악의적인 의도”라고 꼬집었다.


서울시는 지난 27일 제7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를 공원화 결정안’에 대해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자문을 상정했고 도건위는 ‘적극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다만 “공원조성은 역사를 반영하고 많은 시민과 함께 충분히 논의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서울시는 자문 의견을 반영해 6월 중 열람공고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하고 올해 내로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결정할 계획이다. 사실상 도건위 ‘자문’을 명분으로 대한항공에 송현동 부지 매각 수의계약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경복궁 옆 3만6,642㎡ 규모의 송현동 부지는 대한항공이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에 사들였다. 당시 복합문화단지 신축을 추진했으나 학습권 침해 등 관련법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서울시는 수년 전부터 대한항공에 송현동 부지 매입을 제안했지만 가격 차로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현재 송현동 부지의 시장 가격은 최소 5,000억~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서울시는 부인하고 있으나 2,000억원대에서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공익을 이유로 사유재산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공원 부지 결정을 내린 셈이다. 서울시는 (강제) 수용절차도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시의 막무가내식 결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대한항공의 목줄을 죄고 있다.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자금지원을 받을 예정인 대한항공은 유휴재산 매각과 구조조정을 통해 2조원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송현동 부지도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해 최대한의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공원 부지로 결정함에 따라 공개입찰 방식의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매입 후 개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부지를 사들일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 서울시와 수의계약을 한다 해도 매각 대금 납입 기한이 문제다. 대한항공은 9월 말까지 송현동 부지 매각을 일단락하고 자본 확충을 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서울시는 자체감정평가, 예산확보 등 대금 납부 기한을 최소 2년 이후로 산정했다. 대한항공은 최소 5,000억원 이상의 자금 수혈이 미뤄질 경우 부채 비율이 높아져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서울시의 발표에도 대한항공은 당초 계획대로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송현동 부지 매각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매각 주관사인 삼정KPMG·삼성증권은 다음달 입찰에 앞서 잠재적인 인수 후보들에게 인수 의향을 타진하고 있다. 인수 의사를 밝힌 일부 후보들은 ‘서울시의 간섭이 없을 경우’라는 조건을 내걸며 인수 의지를 표명한 상태다. 그러나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공원 변경 작업을 밝힌 터라 잠재적 인수 후보들마저 입찰 불참을 알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칼(180640)과 대한항공의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시장 논리에 따라 최대한 부지 가격을 인정받아 자본 확충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진·박윤선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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