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절하게 택배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배송 조회만 수십 번 새로 고침을 하고 있자면 이런 의문이 생기죠. ‘내 택배는 왜 이렇게 많은 ‘SUB’와 ‘HUB’를 거쳐야 하는 걸까.’ ‘도대체 ‘곤지암HUB’는 뭐하는 곳이기에 내 택배는 죄다 거길 거쳤다 올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우선 HUB와 SUB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HUB(중간물류센터)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보내진 택배 상자가 모이는 곳입니다. 택배를 하나하나 따로 배송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죠. 택배를 한데 불러모아 비슷한 목적지를 가진 것들끼리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런 작업을 업계 용어로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라고 부릅니다. SUB(지역중계터미널)는 각 지역의 영업소에서 모은 택배가 HUB로 향하기 전 1차로 모이는 곳, 그리고 HUB에서 분류된 택배가 고객에게 가기 전 들르는 곳입니다.
구미에서 시킨 내 물건이 대구로 내려간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미에 HUB가 없기 때문이죠. HUB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합니다. 내 택배 하나의 이동 거리만 따진다면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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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HUB에 정말 많은 택배가 모이다 보니, 택배가 누락, 분실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작업 프로세스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기 이전엔 그 빈도가 훨씬 높았죠. HUB의 의존도가 높으면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한 HUB에서 발생한 분류작업의 차질이 꽤 많은 택배 물량의 배송 지연 사태를 빚을 수 있는 거죠.
옥천HUB가 ‘옥뮤다’로 악명 높은 이유가 있죠. 인터넷에 ‘옥천HUB’를 검색해보면 택배를 받지 못해 잔뜩 화가 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십 만 건 택배를 처리하는 옥천HUB는 운이 나쁘면 일주일 넘게 택배가 묶여 있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곤지암HUB의 등장 이후 악명은 과거보다는 많이 완화됐습니다. CJ대한통운의 곤지암HUB는 지난 2018년 완공됐는데요, 그 규모는 유피에스(UPS)의 ‘월드포트(Worldport)’, 페덱스(FedEx)의 ‘슈퍼허브(Super Hub)’에 이은 세계 3위,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메가허브 터미널입니다. 이제는 수도권으로 향하는 CJ대한통운의 물량 대부분이 곤지암HUB를 거치게 됐죠.
택배가 이렇게 모였다 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긴 여정을 거치다 보니 아무리 빨라도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마켓컬리 샛별배송, SSG닷컴 새벽배송, 쿠팡 로켓배송 등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주문해도 다음날 아침까지 물건이 옵니다. 게다가 당일 배송 서비스를 지원하는 업체까지 늘고 있죠. 로켓프레시의 경우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 오후 6시 이전에 배송해줍니다. 어떻게 이 모든 과정을 몇 시간 안에 거칠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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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바로 모든 과정을 다 거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새벽배송의 대표주자, 쿠팡 로켓배송의 배송 조회를 눌러보겠습니다. 앞서 설명한 택배 프로세스와 다르게 굉장히 단출한데요, 어떤 점이 다른지 눈치채셨나요? 로켓배송의 택배 여정에는 영업장(판매자)에서 SUB를 거쳐 HUB로 가는 과정이 없습니다. 쿠팡이 미리 물건을 매입해서 HUB에 쟁여놓기 때문이죠. 우리가 쿠팡에서 로켓배송 상품을 주문하면 제품은 판매자가 아닌 쿠팡이 HUB에서 바로 픽업해 발송합니다. 기존 택배 프로세스의 절반이 날아가는 거죠.
그래서 쿠팡의 로켓배송은 쿠팡HUB에서 소비자에게까지 가는 ‘보이는 물류’와 판매자로부터 쿠팡HUB까지 가는,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는 물류’로 나뉘게 됩니다. ‘보이는 물류’는 쿠팡맨이, ‘보이지 않는 물류’는 여러 물류업체가 처리하죠.
이렇듯 택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물류 프로세스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오늘 시킨 택배는 또 어떤 경로를 통해 내 손에 오게 될지 한번 쯤 눈여겨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민수기자 minsoo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