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작가 빌리 차일디쉬의 개인전이 한창인 리만머핀 갤러리 전경. /사진제공=리만머핀 갤러리
“아직 전시 기간이 남아있으니 완전히 ‘다 팔렸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출품작 대부분에 구매대기 예약자가 있는 상태입니다. ”(외국계 갤러리 영업담당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국내외 미술시장이 출렁이고 있지만, 국내에 상륙한 외국계 화랑들은 순항하고 있다. 환금성이 좋다는 이유로 국내 미술품 수집가들이 해외작가 작품을 선호하는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코로나19 여파로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던 ‘문화비용’이 미술품 구매로 쏠리는 까닭이다.
영국작가 빌리 차일디쉬의 개인전이 한창인 리만머핀 갤러리 전경. /사진제공=리만머핀 갤러리
빌리 차일디쉬 ‘한밤중의 태양과 얼어붙은 호수(midnight sun/ frozen lake)’ /사진제공=리만머핀갤러리
영국의 회화작가이자 음악가 겸 소설가로도 활동 중인 빌리 차일디쉬(61)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종로구 율곡로3길의 리만머핀 갤러리에는 한두 명씩이지만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미 한국에서 몇 차례 전시한 적 있는 작가인데다 영화배우 조니 뎁 등 유명 컬렉터들이 애호하는 작가라는 게 입소문을 탔다. 갤러리 관계자는 “우리도 몰랐던 신규 컬렉터들이 찾아와 문의할 정도로 작가와 작품 자체가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시에서 차일디쉬는 호수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 아이리스가 꽂힌 꽃병 정물 등 친숙한 주제로 자연에 기반한 서정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현대미술의 심장부 격인 뉴욕을 비롯해 유럽의 주요 갤러리들이 전면 휴업 중이던 지난 4월 23일 시작된 이 전시의 개막식은 뉴욕타임즈(NYT)가 보도할 정도로 관심을 끈 바 있다. 레이첼 리만 리만머핀 갤러리 공동창업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뉴욕 맨해튼 지점은 36명 직원 전원의 임금삭감이 불가피한 반면, 서울지점은 전 세계 리만머핀 갤러리 총 매출의 20~25%를 차지하는 주요 거점”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작가 클레어 타부레의 전시가 한창인 페로탕 갤러리 전경. /사진제공=페로탕갤러리
프랑스 작가 클레어 타부레의 전시가 한창인 페로탕 갤러리 전경. /사진제공=페로탕갤러리
프랑스 작가 클레어 타부레의 전시가 한창인 페로탕 갤러리 전경. /사진제공=페로탕갤러리
클레어 타부레 ‘형제자매들’ /사진제공=페로탕 갤러리
종로구 팔판길의 페로탕 갤러리는 프랑스의 젊은 작가 클레어 타부레(39)의 국내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중고품 가게에서 발견한 빅토리아시대 사진을 기반으로 그린 신작을 선보이는 ‘형제자매들’이라는 제목의 전시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로, 형광색으로 밑칠 작업을 한 후 흐릿한 느낌으로 인물을 그려 사람에서 빛이 나는 듯하면서도 내면세계로 빨려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구찌 등 명품브랜드를 거느리고 프랑스 프로축구 스타드 렌 FC의 구단주이기도 한 프랑수아 피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페로탕 갤러리 관계자는 “30~40대 젊은 컬렉터들이 특히 관심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지금은 정서영의 개인전이 한창인 팔판동의 바라캇 갤러리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와중에 꿋꿋이 열었던 작가 듀오 펠레스 엠파이어의 전시가 국내외 호평을 이끌었다. 미국 LA에 본점을 두고 지난해 문을 연 용산구 독서당로의 VSF갤러리도 꾸준히 기획전을 열고 있다. 지난 30일부터는 ‘절친’이라는 제목으로 젊은 작가 6명의 그룹전을 개막했다. 세계 최정상급 화랑 중 하나인 페이스갤러리는 아시아 시장의 거점으로 베이징과 홍콩에 이어 2017년 초 서울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한남동의 페이스갤러리는 로버트 라우센버그, 제임스 터렐 등 거장을 비롯해 다양한 현대미술가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외국계 화랑의 선전에 대해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시중에 풀린 자금이 많은 데다 그간 억제됐던 문화소비에 대한 욕구가 터져 나올 만한 시점”이라며 “한화 5,000만원 이하의 중저가 및 젊은 작가 등 상승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볼 만한 외국 작품들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자칫 한국 작가와 국내 화랑에 대한 소외 우려도 제기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작가의 활동과 이를 발굴한 갤러리의 역할, 이후 경매를 통한 2차 시장의 선순환이 이어져야 하는데 한국 미술시장 생태계 조성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며 걱정의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