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연체 위기에 놓인 개인에 대해 신용대출의 원금 상환을 미뤄주는 특례가 마련됐지만 시행 첫 한 달간 5대 시중은행에서 실제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 유예 건수는 200건 남짓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서 당초 예상한 것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약정 이자는 계속 내야 하고 향후 금융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신청을 꺼리는 탓으로 보인다. 금리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상환 유예 대신 더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코로나19 프리워크아웃 특례가 시행된 지난 4월29일 이후 지난달 22일까지 4주간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에서 원금상환 유예를 받은 가계신용대출 건수(서민금융대출 포함)는 총 219건으로 집계됐다. 프리워크아웃 특례는 코로나19로 소득이 줄어든 개인차주에 대해 마이너스통장·카드론 등을 포함한 신용대출의 원금상환을 최대 1년 미뤄주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월 이후 실직·폐업·임금체불 등으로 소득이 줄어 빚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마련됐다.
처리 건수는 가장 많은 A은행이 80건, 가장 적은 B은행이 12건이었다. 시행 초기지만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데 비하면 규모가 작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프리워크아웃 신청자 수에 견줘 올해 말까지 전 금융권에서 57만명 이상이 이 특례를 적용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상보다 신청이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일용직 근무처럼 증빙자료를 제출하기 어려운 경우라도 지점장의 판단에 따라 상환을 유예할 수 있도록 요건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신청 자체가 많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현재 은행들은 신청자의 건강보험자격 득실 확인서나 사업자등록증명원 등의 서류 제출을 원칙으로 하되 정부 방침에 따라 객관적 증빙이 어려울 경우에는 영업점장의 판단에 따라 진술서로도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 상환유예 승인 건수 가운데는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상환 유예를 신청해 실제로 받으려면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령 가계생계비를 뺀 월 소득이 매달 갚아야 하는 빚보다 적어야 하고 대출 만기까지 1개월 미만으로 남았을 때에만 신청할 수 있다. 향후 신규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 한도를 확대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 이 때문에 실제 신청 건수는 많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카드론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 대형 카드사의 관계자는 “상환 유예 신청 건수가 한자릿수 수준”이라며 “카드론은 단기로 빌려 운영한 뒤 바로 갚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대출금리가 계속 떨어지다 보니 상환을 유예하는 것보다 더 낮은 금리의 대출을 새로 받아 그 자금으로 기존 대출을 갚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