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회원국 등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디지털세에 대해 미국이 맞대응 관세보복 조치를 내리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으로 경기부양에 나선 유럽 국가들이 자금 마련을 위해 디지털세 확대를 검토하면서 미국 IT 기업의 피해가 우려되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 대응한 것으로 분석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 관세부과 등의 제재 조치가 취해질 수 있어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무역분쟁의 전선이 대서양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로버트 라이트하우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해 만들어진 세금 제도가 도입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 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세는 IT 기업의 본사 소재지와 관계없이 디지털서비스 매출에 따라 물리는 세금이다. 구글이나 아마존·페이스북처럼 온라인·모바일플랫폼을 기반으로 국경을 넘어 사업하는 글로벌 IT 기업에 법인세와는 별도로 부과한다. 조사 대상은 EU와 인도·브라질·영국·오스트리아·체코·인도네시아·이탈리아·스페인·터키 등이다. USTR이 적용하기로 한 무역법 301조는 미국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불공정한 관행에 대응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정부에 부여해 조사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이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5월27일(현지시간) 브뤼셀 유럽의회 연설에서 코로나19 회생기금 조성을 제안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앞서 미국은 지난해 프랑스가 디지털세를 도입하자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자국 대기업에 대한 차별로 결론짓고 무역법 301조에 따라 조사를 진행해 24억달러(약 2조8,000억원) 상당의 프랑스 제품에 최고 100%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후 양국은 올해 1월 고율 관세 부과를 유예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디지털세에 관한 조세원칙과 세부안 마련 논의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일단 갈등을 봉합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커지자 일부 국가들이 디지털세 도입을 재추진하면서 디지털세를 둘러싼 무역전쟁 가능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해결을 위해 7,500억유로(약 1,024조원) 규모의 회생기금을 제안한 EU가 이에 디지털세를 포함하며 미국 기업에 부담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현실화할 경우 미중 갈등 못지 않은 충격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요하네스 한 EU 집행위원회 예산위원장은 매출액 7억5,000만유로를 초과하는 유럽 내 글로벌 기업 7만곳에 연간 100억유로를 부담하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발표한 7,500억유로의 기금 계획에 따라 집행위가 떠안을 부채를 상환하려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드는 것 외에 실질적 대안이 없다”며 “우리 목표는 늦어도 오는 2027년 말까지 예산에 새로운 자원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연간 150억~200억유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의 부담금은 회사 규모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위원장은 대기업을 2~3개 범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탄소배출권과 디지털 기업에 대한 세금 등도 함께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세 부과가 미국 경기 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클레테 윌렘스 전 트럼프 행정부 경제고문은 CNBC에 “미국 기업들의 세금 증가로 미 경제 회복은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미국은 디지털 세금이 세계적 표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역협상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