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이어진 수사에 경영위기감 커져…삼성의 고육지책

삼성, 검찰 심의위 소집 신청
임원 30여명 100여차례 檢 소환
"삼성 경영공백 막으려 선제대응"
'사법처리 피하기' 최후의 카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9일 중국 출장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 및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기소 여부를 외부 전문가들이 판단해달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번 사건의 기소 및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삼성을 표적으로 과잉수사를 이어가는 검찰 대신 일반 시민들의 합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재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중 갈등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황에서 더 이상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위기극복 행보가 타격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삼성의 절박함이 느껴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검찰의 연이은 수사에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피고인들은 물론 삼성의 위기경영도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장 지난 2018년 말부터 지금까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삼성 전·현직 경영진 30여명이 100여차례나 검찰에 불려갔다.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사장),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 등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다. 검찰의 압수수색 횟수도 외부에 알려진 것만 20여차례에 이른다. 특히 삼성물산 합병 건은 2016년 12월 특검의 수사가 시작된 후 3년 반 동안 동일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한 기업을 상대로 4년째 수사를 이어가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에 검찰의 무리한 수사까지 더해지며 삼성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인 상태”라고 말했다.

삼성 수사의 초점이 계속 바뀌는 점도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로 2018년 11월에 시작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는 이후 증거인멸, 삼성물산 합병, 경영권 승계 등으로 수사의 초점이 계속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가 아니라 혐의가 나올 때까지 파고 또 파는 ‘먼지떨이식’ 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2017년 8월 “검찰이 불신을 받는 내용을 보면 ‘왜 그 수사를 했느냐’ ‘수사 착수 동기가 뭐냐’를 의심하는 경우가 있고 ‘과잉 수사다’ ‘수사가 너무 지체된다’는 문제 제기도 많다”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도입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장기간의 수사에도 검찰은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검찰이 핵심 증거 확보 여부와 상관없이 이 부회장을 기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중요 사건에서 핵심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은 전례가 거의 없는 만큼 체면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이 부회장을 기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이에 삼성이 더 이상 검찰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며 반격 카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이 검찰 수사에 따른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을 피하기 위해 선제 대응에 나섰다는 해석도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6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뉴 삼성’을 선언한 후 활발한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3일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만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논의했고 같은 달 17~19일에는 코로나19를 뚫고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최근에는 평택캠퍼스에 18조원을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구축 계획을 밝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같은 복합위기 상황에 기업 총수가 각종 수사·재판에 붙잡혀 있으면 정상적인 경영은 불가능하다”며 “삼성은 이 부회장 사법처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검찰수사심의위원회라는 최후의 카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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