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흥미로운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19~80세 성인 5,020명을 대상으로 공공조직과 단체에 대한 신뢰도를 설문조사한 결과(2019년 5~6월 기준) 입법·사법·행정부 등 국가권력을 이루는 ‘3부’의 신뢰도가 50%도 채 넘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경찰(39.09%)과 언론(40.5%)도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면 신뢰도가 50%를 넘긴 곳은 시민운동단체(52.66%)와 국세청(50.1%)이 유일했다. 국민들이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여전히 시민단체들에 변함없는 믿음과 지지를 보내고 있을까. 최근 부실회계와 후원금 유용 의혹에 휩싸인 정의기억연대와 정의연 이사장 출신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참담한 조사 결과가 예상된다. 지난달 7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첫 폭로로 불거진 정의연 사태가 한 달 가까이 흘렀지만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회계처리 오류와 지급처 허위기재, 수혜인원 부풀리기, 개인계좌를 통한 기부금 모금 등 지금까지 드러난 것들만 한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윤 의원과 정의연 측의 해명도 오락가락하면서 불신을 더 키우는 모습이다.
정의연 사태는 동시에 한국 시민단체의 민낯을 드러냈다. 시민의 자발적 기부와 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는 투명성이 생명이다. 하지만 정의연뿐 아니라 상당수 시민단체들은 인력 부족과 관행을 이유로 불투명한 회계처리와 주먹구구식 재정집행을 수십 년째 이어온 사실이 드러났다. 내가 낸 돈이 허투루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배신감에 기부를 중단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지원이 절실한 소외계층의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깜깜이’ 회계를 답습해온 우리와 달리 해외에서는 정부 보조금이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은 공익법인의 의무 외부감사 기준이 훨씬 높을뿐더러 허위·부실공시가 반복되면 가차 없이 지정기부금 단체지정을 취소한다. 피땀 어린 국민의 세금과 기부금이 투입되는 시민단체일수록 도덕성과 투명성의 잣대를 더욱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믿음에서다.
대한민국에서 시민단체의 사회적 영향력은 눈에 띄게 커졌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내부통제와 사회적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시민단체가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의 관리·감독 못지않게 조직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자정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시민들의 신뢰를 잃으면 시민운동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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