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두번째) 미 국무장관이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 주역인 왕단(가운데) 등 4명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3일 이 사진을 공개하며 이들을 중국공산당이 잔혹하게 진압한 영웅적 민주화 시위 참가자라고 소개했다. /사진제공=미 국무부
6월4일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 사태 31주기를 맞아 미국은 “자유와 인권을 염원하는 중국인들과 함께 간다”며 반중 정책을 분명히 했고 이에 대해 중국은 “(톈안먼 시위를 진압한) 신중국 노선이 옳았음이 증명됐다”며 반박했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론에 무역분쟁·화웨이 등과 함께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까지 겹치면서 톈안먼 사태를 둘러싼 미중의 대립이 한층 격화됐다. 홍콩 입법회(국회)는 중국 국가(國歌)인 의용군행진곡을 모독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법’을 전격 통과시킴으로써 톈안먼 31주기를 무시하며 보안법 논란에도 기름을 부었다.
4일(이하 현지시간) 친중파가 장악한 홍콩 입법회는 범민주진영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국가법’을 표결에 부쳐 찬성 41표, 반대 1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중국 국가를 공공장소 배경음악, 상업광고 등에 사용하는 것은 물론 풍자나 조롱의 목적으로 노랫말을 바꿔 부르는 행위도 금지한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에 이어 국가법을 추진한 것은 지난해 ‘송환법(범죄인인도 법안)’ 반대와 같은 민주화 시위의 뿌리를 뽑으려는 의미로 홍콩인들은 물론 국제사회의 반발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친중파가 장악한 홍콩 입법회가 4일 ‘국가법’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민주파 의원들이 반대하는 것을 경위들이 동원돼 가로막고 있다. /AFP연합뉴스
톈안먼 31주기를 앞두고 미국은 대중 압박 공세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AFP통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3일 “어제(2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당시 시위의 주역인 왕단과 쑤샤오캉, 리안 리, 헨리 리 등 4명을 국무부에서 만났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는 폼페이오가 이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이들은 1989년 6월4일 중국공산당이 잔혹하게 진압한 영웅적 민주화 시위 참가자 수천 명 중 4명”이라고 설명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기본적 인간 존엄과 근본적 자유, 인권을 보호하는 정부를 염원하는 중국인들과 함께한다”고 강조했다.
대중국 공세에는 대만도 끼어들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4일 페이스북에서 “지구상의 다른 지역과 달리 중국은 1년에 364일밖에 없다. 이는 한 날이 잊히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 당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6월4일을 가리키는 달력 사진 한 장을 올려 ‘톈안먼 사태’를 기억할 것을 촉구했다. 대만 정부는 앞서 3일 성명에서 “중국이 6월4일 발생한 사건의 역사적 사실을 재평가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6월4일자 달력. /페이스북 캡처
홍콩에서는 4일 저녁 범민주진영이 톈안먼 시위 추모 집회와 시위를 빅토리아공원에서 강행했다.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집회 불허 방침을 내렸지만 야권에서는 홍콩 보안법이 아직 시행되기도 전에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시작됐다며 반발했다. 홍콩 정부는 이날 3,000여명의 폭동진압 경찰을 배치해 시민들을 위협했다.
중국인들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받았다. 이날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는 외신기자의 출입이 금지됐으며 중국인들도 소지품과 신체검사를 당했다. 웨이보 등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여전히 ‘6·4’의 검색이 차단돼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부는 1980년대 말 발생한 정치풍파에 대해 이미 분명한 결론을 내렸다”며 “신중국 성립 70여년 만에 이룬 위대한 성취는 우리가 선택한 발전 경로가 완전히 옳았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그렇게 자신 있으면 왜 검열하느냐’는 질문에는 “법률이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한편 베이징은 물론 홍콩의 사정은 악화되고 있다. 베이징시는 톈안먼 사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돌리려는 듯 총 122억위안(약 2조원)의 소비 쿠폰을 주민에게 뿌리기로 했다. 식당과 소매점에서 6일부터 사용이 가능하다.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30%는 홍콩 이외의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주홍콩 미국상공회의소 조사에서 나타났다. 영국계 금융기관인 HSBC·스탠다드차타드(SC)가 친중파의 ‘사드 보복’ 방식 압박에 못 이겨 결국 홍콩 보안법 지지 의사를 밝힌 것도 기업들의 어려움을 방증한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중국이 경찰력을 동원해 4일 톈안먼광장 주변을 통제한 가운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시민들도 신분증 및 가방 검사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