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탈북민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라고 압박하면서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함에 따라 ‘대북전단’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4일 김 제1부부장의 담화가 알려진 지 4시간 반 만에 긴급 브리핑을 열어 대북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해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대북전단 중단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 시기에 대해선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 “실제로 살포된 전단의 대부분은 국내 지역에서 발견되며, 접경 지역의 환경오염, 폐기물 수거 부담 등 지역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남북 방역 협력을 비롯해 접경 지역 국민들의 생명,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대북전단’ 살포 행위 중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김 제1부부장은 이날 오전 ‘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지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판문점 선언’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남한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하지 않을 시 개성공단 완전철거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군사합의 파기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대북전단 관련 남한 정부 조치를 두고 강한 어조의 비판을 쏟아내면서 “똥개들은 똥개들이고 그것들이 기어 다니며 몹쓸 짓만 하니 이제는 그 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며 “분명히 말해두지만 또 무슨 변명이나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냥 간다면 그 대가를 남조선당국이 혹독하게 치르는 수밖에 없다. 최악의 사태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제 할 일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31일 김포시 월곶리 성동리에서 ‘새 전략핵무기 쏘겠다는 김정은’이라는 제목의 대북 전단 50만장,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천장, 메모리카드(SD카드) 1천개를 대형풍선 20개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지난달 1일 밝혔다. 사진은 대북전단 살포하는 탈북민단체. /사진 제공=자유북한운동연합
이에 따라 정부로서는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됐다. 남북연락사무소와 남북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의 최대 성과로 내놓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 판문점 선언에서도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를 법률로서 금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문제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정면 충돌해 논란이 불가피한데다 진보와 보수의 입장차도 뚜렷해 국회 통과가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 무엇보다 남북교류협력법에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 자체를 규제할 만한 근거가 없다.
대법원도 대북전단 살포행위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다. 지난 2015년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본부의 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은 대북전단 살포활동을 하다 경찰 등에 제지를 당하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하면서 정부의 배상 책임은 없지만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원칙적으로는 제지할 수 없다”며 표현의 자유 역시 중요하다고 봤다. 대법원 역시 해당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에 더해 지난 2016년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외교통일위원회에 계류하다 21대 국회 출범으로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에는 대북전단 살포시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북한이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군사합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남북접경인 창린도에서의 해안포 사격과 최근 북한군의 남측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에 대해 각각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북측에 항의했지만, 북한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