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시옹 에프 건물 전경. / 사진출처=중소기업연구원 중소기업 포커스 제18-28호, 스타시옹 에프 홈페이지
프랑스 파리 13구 세느강 근처에는 국영 철도회사가 1929년 지은 기차역이 한때 흉물처럼 있었다. 금융위기 이후 청년 고용을 스타트업으로 풀기로 한 프랑스는 2017년 이 기차역을 허무는 대신 기능을 그대로 살려 여의도 공원에 15배인 3만4,000㎡규모의 스타시옹 에프 (Station F)로 바꿨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스타시옹 에프는 일터와 거주공간, 스포츠 센터, 카페, 바 등 공동 생활 공간이 한 데 모였다. 1,000여개의 스타트업이 근무하며 40개 벤처투자사, 35개 정부기관도 입주했다. 이 곳은 기능별로 창조 구역, 공유 구역, 휴식 구역으로 나뉜다. 창조 구역에는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한국 기업으로는 네이버가 운영하는 스페이스 그린이 있다. 스타시옹 에프는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2017년 10월 문을 연 지 7개월만에 6만3,000여명이 다녀갈만큼 프랑스의 명소가 됐다. 물론 국내에도 판교 창업존, 서울창업허브와 같은 대규모 창업공간이 적지 않다. 스타시옹 에프와의 차이에 대해 박 연구위원은 “스타시옹 에프는 국가, 연령, 성별 학력 제한을 두지 않는 다양성이 특징”이라며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기업이 한데 모일 때 발생하는 밀집 효과와 도시 재생을 연계한 프랑스적인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그린 뉴딜 정책 일환으로 프랑스의 스타시옹 에프를 벤치마킹한 도시재생 창업공간을 조성한다. 노후화된 시설과 문화를 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스타트업을 모은 기존 창업공간과 차별된다.
5일 정부에 따르면 중기부는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그린 스타트업 타운’ 조성을 위한 예산 5억원을 배정했다. 그린 선도기업 육성(205억원), 규제자유특구 혁신사업(64억원) 등 그린 뉴딜 관련 3차 추경 예산 319억원에서 차지하는 금액 비중은 작지만, 중기부의 그린 뉴딜에 대한 상징성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중기부 관계자는 “도시재생과 연관한 창업과 혁신기업이 모이는 지역을 조성할 계획”이라며 “일단 5억원은 복합허브센터 1곳의 리모델링 설계비를 책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그린 스타트업 타운은 스타시옹 에프를 벤치마킹한다”고 설명했다.
그린 스타트업 타운의 관건은 부지 선정이다. 스타시옹 에프가 기차역을 활용한 것처럼 상징성있는 노후 건물을 고르는 게 우선이다. 입주시설로서만 기능을 하는 건물인 지역별 테크노파크,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이 점이 차별화된다. 도시재생 기능이 별도로 없는 중기부는 국토부, 환경부 등과 협업해 부지를 고르고 이달 중 지자체가 신청하는 공모 방식으로 후보지를 결정한다. 중기부에서는 최소 3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성동구에 조성된 소셜벤처 허브의 경우 낡은 공장과 폐창고의 내부를 개조해 스타트업을 입주시켰다는 점에서 스타시옹 에프와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이 곳을 대표할만한 상징적인 건물이 없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이 작년 11월 서울 한 식당에서 세드릭 오(왼쪽 두번째) 프랑스 경제재정부 디지털 담당 국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제공=중기부
‘한국판 스타시옹 에프’는 박영선 장관이 장관이 되기 전부터 구상한 정책이다. 작년 3월 국회에서 열린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박 장관은 “도전적인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프랑스의 스타시옹 에프와 같은 개방적 혁신 거점을 국내외에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후 박 장관은 같은 해 11월 스타시옹 에프를 직접 방문하고 그원 샐리 스타시옹F 신사업부문장 등을 만나 밑그림을 그려왔다. 박 장관은 최근 게임스타트업과 간담회에서 “고층 빌딩에 입주하는 것보다 낡은 골목길이 주는 문화와 어우러진 공간에서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스타트업도 많다”고 그린 스타트업 타운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