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새 '초일류' 도약했지만…'사법 리스크'에 흔들리는 삼성[양철민의 인더스트리]

23년전 이건희 "삼성은 1류 기업 비해 경쟁력 턱없이 약해"
2020년 삼성은 메모리, TV, 스마트폰 압도적 글로벌 1위
최근 4년 새 사법리스크에 삼성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오너경영' 통해 성장한 삼성.. 전문경영인 낫다는 일각의 환상 버려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우리는 세계 1류 기업에 비해서는 경쟁력이 턱없이 약하다. 그런데 그들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점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여느 2류 기업 경영자의 한탄 같기도, 어떻게 보면 조바심 같이 보이기도 한 이 문구는 사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 지난 1997년 내놓은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나오는 말이다. 이 회장의 우려대로 23년전 삼성SDI(006400)의 전기차 배터리, 삼성디스플레이의 전장용 디스플레이 등과 크게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장기적 안목이 돋보이는 선택이란 평가도 나왔다.

넥스트 '비전 2020' 못내놓은 삼성
문제는 최근 4년간의 삼성 그룹 행보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재판으로 지난 2017년부터 1년 가량 구속 수감된데 이어 잇따른 검찰 조사로 삼성그룹 핵심 경영진이 구속 수감되는 일이 잇따르면서 삼성 특유의 추진력이 힘을 잃고 있다. 지난 2018년 말부터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삼성 전·현직 경영진 30여명이 100여차례나 검찰에 불려가며 ‘절름발이’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113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중이지만 이 같은 사법 리스크에 3년전 하만 인수 이후 ‘빅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임기가 제한된 전문경영인의 판단만으로는 십수년을 내다보는 수조원 가량의 ‘빅딜’에 나서기에 무리가 따르는 탓이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1만5,000여명의 신규 인력 채용에 나서겠다고 지난해 밝힌 것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 때문이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최근 LCD 사업을 정리하고 마이크로LED나 QD디스플레이에 집중하기로 한 것 또한 이 부회장 특유의 선택·집중 경영 철학이 반영된 판단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의 ‘미래 비전’ 공백도 여전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2020년까지 연간 매출액 4,000억달러, 브랜드 가치 세계 5위 이내를 달성하겠다”는 이른바 ‘비전 2020’을 제시했지만 올해의 절반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 신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30년 시스템 반도체 부문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의 경우 삼성전자 DS 사업부에 국한되는 비전이라는 점에서 삼성전자 전체를 아우르는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삼성 내외부에서 꾸준히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 경영인의 경우 ‘대리인 문제’ 발생 외에도 임기 연임을 위한 단기 실적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만 오너 경영은 발빠른 의사결정 및 주인의식에 기반한 강한 리더십이란 장점이 있다”며 “오너 경영 또한 독단경영 및 사익추구 행위 등의 문제가 있지만 삼성은 실적으로 주주들을 만족시키는데다 이 부회장이 최근 경영권 승계 포기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사익추구 행위 등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오너가 없는 은행 산업이 ‘우간다 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듣는 것과 일부 공기업들의 부실 운영 등을 전문경영인 제도의 문제가 드러난 실제 사례로 꼽는다. 오너 경영의 경우 임직원 대상의 갑질 및 자회사를 통한 사적 이익 수취가 가장 큰 문제로 분류되지만 삼성의 경우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등으로 관련 문제 발생 소지를 원천 차단해 놓은 상황이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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