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호재기자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 부회장이 구속을 면함에 따라 삼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불확실성 속에 총수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다. 다만 법원이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의 중대성’을 인정하면서 검찰은 불구속 상태에서라도 기소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재판에서도 양측의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그동안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며 “그러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함께 영장이 청구된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의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이 부회장은 구속을 피했지만 향후 검찰은 이 부회장 기소 방침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구속사유가 되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사유인 ‘혐의의 중대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도주할 우려가 없을 뿐 아니라 검찰이 지난 2015년 사건 발생 이후 압수수색을 여러 차례 진행해 증거인멸 우려도 쉽게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이 때문에 검찰과 삼성 측이 ‘혐의의 중대성’을 놓고 다툴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삼성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검찰도 영장은 기각됐지만 1년 반 넘게 끌어온 수사의 막바지에 이 부회장을 기소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 부회장 측이 서울중앙지검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해달라고 신청한 만큼 수사팀은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우선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수사심의위에서 검찰 수사가 ‘무리하다’는 의견, 기소는 ‘부당하다’는 의견 등을 피력할 경우 검찰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삼성은 “총수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앞으로 열릴 검찰 수사심의위의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에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거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길 수 있는 만큼 삼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손구민·이재용기자 kms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