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서울경제DB
울산지역 보도연맹 학살사건의 유족 중 피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이 국가로부터 배상 받을 길이 열렸다. 국가배상청구권의 ‘불법행위로부터 5년’이라는 소멸시효가 위법한 직무집행에 따른 민간인의 집단 희생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결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권모씨 등 울산 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유족 4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고 9일 밝혔다.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0년 이승만 정부의 지시로 전국 각지에서 군·경·서북청년단이 보도연맹 소속 구성원들을 소집·연행·구금한 후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보도연맹은 정부가 해방 이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을 모아 조직한 반공 단체다. 하지만 당시 할당제에 따라 공무원들이 사상범이 아닌 사람까지도 반강제적으로 등록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4,934명에 달한다.
울산에서도 지역 군·경이 그 해 6~8월 보도연맹원들을 연행한 후 집단 총살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로 공식 확인된 희생자만 407명이며, 2012년엔 유족 482명에 대한 국가배상 판결도 확정됐다. 권씨 등은 진실화해위의 희생자 확정 사실을 몰라 배상을 청구하지 못했거나 이후 추가 자료를 통해 처형 기록을 확인한 유족들이다.
현행법은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때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란 장기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8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과 중대 인권침해 및 조작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위헌 결정했다”며 “관련된 모든 사건에 효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원고가 청구한 사건이 이에 해당하는데도 원심은 위헌 결정으로 효력이 없어진 규정을 적용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민법상 주관적 소멸시효인 ‘피해자가 손해 사실과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을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시점은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결정통지서가 송달된 날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결정 통지서가 송달된 날은 개인에 따라 각각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각각의 소멸 시효 완성 여부에 대한 심리는 파기환송심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