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최근 잇따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를 벌리며 치고 나가고 있다. 특히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을 계기로 미 전역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항의시위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치유자’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이념대결과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적인 행보를 보여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8일(현지시간) CNN은 지난 2~5일 1,259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3.4%포인트) 결과 바이든이 55%의 지지율을 기록해 41%에 그친 트럼프를 14%포인트 앞섰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격차는 CNN의 지난달 조사(바이든 51%, 트럼프 46%)에 비해 더 벌어진 것으로 최근 1주일간 발표된 주요 여론조사 결과 가운데서도 가장 크다.
8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가운데) 전 부통령이 백인 경찰관에게 희생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삼촌 로저 플로이드(오른쪽) 등 유족들과 만났다고 유족 변호사 벤저민 크럼프가 밝혔다. /크럼프 트위터
이번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나왔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찬성한다는 답변은 38%로 지난달보다 7%포인트 하락했다. 응답자의 57%는 그의 직무수행에 반대했다. CNN은 이번 직무수행 지지율은 자체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또 응답자의 61%는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발생한 항의시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 사태 처리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해롭다고 답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 같은 기세를 몰아 플로이드 사망 항의시위 현장을 찾은 데 이어 플로이드의 유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는 등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날 플로이드의 고향인 텍사스주 휴스턴을 찾아 유족들과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플로이드 유족 측 변호사인 벤저민 크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바이든 전 부통령과 유족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번 만남을 공개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9일 열리는 플로이드의 비공개 장례식에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이 같은 바이든의 행보에 대해 “바이든은 휴스턴에서 플로이드 가족과 만나면서 자신을 안정적이고 인정 많은 리더로 내세우며 미국의 최고치유자(healer-in-chief)가 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법무장관, 주 검찰총장, 경찰협회장 등이 참석한 라운드테이블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여론조사 결과를 “가짜”로 매도하는 한편 플로이드 사망을 촉발한 경찰의 부당한 폭력 등을 막으려는 경찰개혁 목소리를 이념논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에서 “CNN 여론조사는 그들의 보도만큼 가짜”라며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할 때의 수치도 이와 같았다면서 “민주당원들은 미국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사태로 일시 중단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선거 유세를 재개해 반격에 나설 방침이다. 트럼프 캠프는 이날 성명에서 “조 바이든이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군중과 열정을 보게 될 것”이라며 2주 후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인종차별 반대행진에 나선 밋 롬니 상원의원(공화·유타)의 동영상을 올리고 “대단한 사람이네. 이런 정치적 감각으로는 지역구인 유타주에서 지지율이 폭락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롬니 의원은 이날 대선과 관련해 “누구를 뽑을지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필요성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경찰 예산 삭감이나 경찰서 폐지 등 과격한 주장에 민주당과 대선후보인 바이든 전 부통령이 동조한다는 식으로 역공에 나섰다. 그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트윗에서 “이제 급진적인 좌파 민주당은 우리의 경찰 예산을 끊어버리고 경찰을 폐지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 스스로를 ‘법과 질서의 대통령’으로 칭하며 이날 법 집행관들과 간담회를 열어 “예산 삭감과 경찰서 해체는 없을 것”이라며 “경찰은 우리가 평화롭게 살도록 해왔다. 99%의 경찰은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바이든 전 부통령의 대선캠프 대변인인 앤드루 베이츠는 바이든이 경찰 예산 삭감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경찰 개혁을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도 예산 삭감은 의회에서 다룰 이슈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이는 지역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민주당은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저지하고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경찰개혁 법안을 공개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