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도 삐끗하면 망한다"... 어느 때보다 울림 큰 '삼성 위기론'[양철민의 인더스트리]

이건희 회장 "리더 자리 뺏기 보다 유지가 힘들어"
이재용 부회장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
NEC·노키아·히타치·모토로라 몰락 속 삼성만 생존
中 추격과 무역분쟁.. 힘에 부치는 삼성의 '초격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호재기자.

“목표가 있으면 뒤쫓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번 세계의 리더가 되면 리더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된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첫번째 발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 지난 1990년대 중반 메모리 반도체 1위에 오른 후 회의석상에서, 두번째 발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사업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당부한 말이다.

이들의 발언에는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에 오른 기쁨이나 30년 가까이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를 지킨 뿌듯함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날 정도의 조바심과 ‘1위 기업도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업계에서는 삼성 총수 일가의 이 같은 절박함은 삼성의 숨가쁜 성장 역사를 돌이켜보면 당연한 것이라 입을 모은다. 삼성의 성장 역사는 매 순간이 위기였고 그 위기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특히 삼성의 현재 ‘초격차’ 전략 또한 누군가의 ‘패스트팔로잉’ 전략에 의해 언제든 힘을 잃을 수 있다. 삼성 또한 ‘패스트 팔로잉’ 전략을 기반으로 선두 사업자를 제쳤기에, 이 같은 위기의식은 삼성 특유의 유전자(DNA)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진출 후.. 하루하루가 위기


1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983년 반도체 산업 진출을 선언한 후 매년 위기를 겪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역사의 시작은 ‘맨땅에 헤딩하기’란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무모함에 가까웠다. 다른말로 하면 그만큼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혜안이 돋보이는 판단이었다.

1980년대는 일본의 도시바를 비롯해 히타치, NEC 등이 번갈아 D램 시장 1위를 차지하는 사실상 ‘일본 천하’였다. 1985년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매출은 NEC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했다. 삼성전자가 1984년 64K D램 양산에 성공해 미국에 관련 제품을 수출하며 존재감을 알렸지만 현재 중국산 반도체와 비슷한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기회는 우선 외부에서 찾아왔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일본 업체들의 수출 경쟁력이 곤두박질 친다. 여기에 1986년 일본의 반도체 독식을 견제하던 미국은 일본산 반도체에 관세 부과를 골자로 한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도록 강요한다. 미국은 1970년대에 일본 정부가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기업에 2억 달러를 무상 지원했으며 20억 달러규모의 저리 대출을 통해 자금을 우회 지원했다는 혐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압박에 나선다. 1970년대 D램 시장을 주도하던 인텔이 1위 자리를 일본업체에 내주고 시스템 반도체에만 집중하는 등 자국 산업의 근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지금의 트럼프 행정부를 연상시키는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팔비틀기’였다.


미국은 또 일본산 제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거나 일본 시장에서 외국산 반도체 점유율 20% 이상 유지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일본 반도체 경쟁력을 약화 시킨다. 1980년대 반도체 산업의 주 수요처인 컴퓨터 분야의 불황으로 업계 전체에 ‘공급과잉’이 발생한 것 또한 일본 업체에게는 악재였다. 글로벌 반도체 매출 순위에서 1989년까지만 해도 NEC·도시바·히타치 등 일본 업체가 나란히 1·2·3 위를 차지했지만 1992년에는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인텔이 1위 자리에 재등극하는 등 산업 구조가 재편된다.

삼성전자 16GB LPDDR5 모바일 D램. 삼성전자는 D램 시장 진출 10여년 만에 업계 1위에 올라선 후 30년 가까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에게는 기회였다. 삼성전자는 매년 수천억원 가량의 투자를 통해 반도체 분야에서 ‘패스트 팔로잉’ 전략을 펼친다. 당시 삼성전자의 연구개발(R&D) 비용 비중은 매출의 15% 내외로 ‘기술의 삼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시간을 가진다. 삼성전자는 1986년 1메가(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기술 격차를 좁혀오다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 후부터는 추격에 한층 고삐를 죄게 된다. 이 회장은 반도체 공정에 ‘스택형’ 도입, 8인치 웨이퍼 생산라인 선제 도입 등으로 경쟁 업체들을 하나 둘 제치게 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계 매출 순위에서도 1993년 후지쯔, 미쓰비시전기 등을 제치고 7위에 오르며 사상 첫 ‘톱10’에 이름을 올리는 등 본격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기술력 만큼 탁월한 경영 전략에 높은 점수를 준다. 일본 히타치 제작소 연구원 출신인 유노가미 다카시는 자신의 저서 ‘일본 반도체 패전’을 통해 일본은 ‘과잉품질 및 과잉성능’에 집착한 반면 삼성전자는 수율 및 비용 최적화에 중점을 둔 것이 지금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IBM이 주도하는 메인프레임용 D램에 적합한 고품질 제품 양산에 힘쓴 반면 삼성전자는 PC 시대 도래에 발 맞춰 수율 및 생산성을 두루 고려한 맞춤형 D램을 내놓는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존 장비를 보다 오래 사용하는 요소기술, 생산기간을 대폭 줄인 인티그레이션 기술, 웨이퍼 당 수율을 끌어올리는 생산기술에서 앞선 반면 일본 업체들은 생산 설비 확보를 통한 ‘규모의 경제’에 매달린다.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이 같은 생산설비에 대한 집중 투자 때문에 2000년대 초반 감가상각비가 전체 비용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용 부담이 높아지게 된다.

또 삼성전자는 전략마케팅 팀에 인재를 배치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시장에 적기에 내놓은 반면 일본 업체들은 연구부서에 인재를 몰아넣고 의사결정권도 기술 고도화에 천착했던 연구쪽 인력에 많이 부여해 결국 시장 흐름을 놓치게 된다. 일본 업체들은 반도체 기술 향상을 위해 지난 2001년 일본 업체 12곳과 삼성전자가 참여한 ‘반도체첨단테크놀로지(Selete·아스카프로젝트)’를 결성했지만 이때도 ‘패스트 팔로잉’ DNA를 십분 활용한 삼성전자가 가장 많은 혜택을 본다.

노키아·모토로라 무너질 때.. 스마트폰으로 우뚝솟은 삼성


삼성전자의 또 다른 도약대였던 ‘스마트폰’ 사업 또한 ‘그때도 위기, 지금도 위기’다. 삼성전자는 2008년 애플 ‘아이폰’(당시 통신사 방훼로 국내 도입이 안됐었음)의 대항마로 ‘옴니아’를 내세우며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려 하지만 처참히 실패한다. 옴니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OS)인 ‘윈도모바일’ 기반의 스마트폰으로 PC처럼 중간중간 재부팅을 해줘야 하는 등 아이폰과 성능 차이가 컸다. 반면 애플 아이폰은 ‘PC를 손바닥만한 기기에 구겨넣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경박단소(輕薄短少)’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돌풍을 일으킨다. 자체 제작한 OS인 iOS 덕분에 이용자환경(UI)도 경쟁사 제품을 압도했다.

삼성전자는 발빠르게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한 ‘갤럭시S’를 2010년 3월에 내놓으며 ‘애플의 대항마는 삼성’이라고 공개 선언한다. ‘구글에 OS가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시장 선점이 우선’이라는 삼성전자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과감한 승부수였다. ‘졸면 죽는다’는 IT업계의 격언을 되새기며 ‘애니콜’의 성공에 도취하지 않은 이건희 회장의 결단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LG전자가 ‘초콜릿폰’, ‘프라다폰’ 등의 잇딴 피쳐폰 성공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한발 늦게 진출하고, 노키아 또한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상황에서 이 같은 승부수는 결국 ‘초대박’으로 이어진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 삼성전자는 구글과 손잡고 내놓은 갤럭시S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선다.

이후 모토로라, HTC 등 주요 스마트폰 업체들이 몰락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갤럭시’를 앞세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또 한번의 성공 역사를 써내려간다. 일각에서는 1995년 단행한 이건희 회장의 ‘휴대전화 화형식’ 유전자가 ‘갤럭시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삼성전자는 2020년 현재 전 산업분야에서 또다시 기로에 섰다. 30여년전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의 규제 강화와 한국 업체의 맹추격에 무너졌듯, 2020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 반도체 산업 견제를 위해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수출 규제에 나서는 등 소재 부문에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연내 LPDDR4 8Gb D램과, 128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공식화 했다. 중국이 실제 관련 제품 양산에 성공할 경우 삼성전자와의 기술 격차는 2년 이내로 좁혀진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한국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스마트폰 또한 마찬가지다. 폴더블폰 등 잇딴 혁신제품 공개에도 불구하고 화웨이,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중이다. 일각에서는 이들 업체의 특허 도용과 인력빼가기 등의 문제를 언급하지만 소송 제기시 중국 정부를 중심으로 한 또다른 형태의 보복을 우려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각 제품에 적용되는 기술이 나노(10억 분의 1m) 단위로 까지 미세화 되면서 제아무리 삼성전자라도 기술 격차 확대가 쉽지 않다는 점 또한 우려할 부분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현장에서 꾸준히 ‘위기’를 강조하는 것이 엄살이 아닌 ‘진짜 위기’에 대한 우려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하냐’는 말을 하지만 삼성이 없다면 한국의 국력과 국민 생활 수준이 10년 이상은 뒷걸음질 칠 것”이라며 “특히 글로벌 기업 삼성이 국내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투자 계획 등에 차질을 빚는 것은 중국 등 경쟁 업체들에게 기회를 주는 꼴”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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