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북측수행원이자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악수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공동사진기자단
“전화 연결은 매끄럽게 진행됐고, 전화 상태는 매우 좋았습니다. 마치 옆집에서 전화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윤건영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지난 2018년 4월 20일. 남북 정상회담준비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이었던 윤 실장은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linte·직통전화)’의 사상 첫 개통 소식을 이같이 전했다.
이후 2년여 간 남북 대화와 신뢰의 ‘시그널’로 여겨졌던 청와대 핫라인이 단절 위기에 직면했다. 발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지난 4일 담화다. 김 제1부부장은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않을 경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와 남북군사합의 파기, 개성공단 완전 철거까지 감행하겠다며 우리 정부를 향해 칼끝을 겨눴다. 통일부는 담화 직후 4시간 만에 대북전단 살포를 방지할 대책을 이미 계획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유화적 태도에도 북한은 고자세를 유지했다. 청와대 핫라인을 비롯해 남북 간 모든 연락 채널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한 것. 지난 9일 오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20년 6월 9일 12시부터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 통신연락선, 북남 통신시험연락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 통신연락선을 완전차단, 폐기하게 된다”고 밝혔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사진제공=청와대
북한은 뜸을 들이지 않았다. 같은 날 오전 9시와 낮 12시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통일부의 전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과 양측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 전화도 신호음만 울릴 뿐이었다.
다만 북한의 엄포대로 청와대의 핫라인마저 ‘불통’이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이 실제로 끊어졌는지 여부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 간 소통과 관련해서는 확인해 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며 말을 아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그간 핫라인을 통해 소통해왔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청와대 핫라인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계 성과물 중 하나다. 지난 2018년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대북특사단이 평양에서 핫라인 설치 합의를 이끌어냈다. 핫라인은 문 대통령의 업무 공간인 청와대 집무실과 관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세 군데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핫라인은 김 위원장의 업무 공간인 조선노동당 청사에 마련됐다.
지난 8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연합뉴스
청와대는 북한의 태도변화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고,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북한의 의도 파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청와대 핫라인을 끊고 우리 정부를 ‘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정부 입장을 오전에 통일부가 밝힌 바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남북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수단이므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전했다.
북한이 대북전단을 빌미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북 정상 간 있었던 합의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에 따른 북측의 누적된 불만 같다”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우리의 최고 지도자에 대해서 상대국가가 모욕하는 전단지 살포를 만약에 한다면, 그것도 더욱이 그 나라가 싫어서 나온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다고 하면 자극하는 문제임에 분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