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이순신 장군 추정 초상화(왼쪽)와 청전 이상범 화백이 그린 충무공 이순신 영정(오른쪽.)/엘리자베스 키스 그림 제공=책과함께
푸른 융복, 하얀 새털이 달린 전립, 그리고 지휘봉. 목숨 건 전투를 숱하게 겪어낸 군인답게 얼굴은 살짝 야위었다. 하지만 눈빛은 빛난다. 굳게 담은 입술은 부드럽지만 결의가 느껴진다. 앞에 선 사람을 꿰뚫어볼 듯 날카로운 눈매와 반듯한 귀, 단정하게 다듬어진 수염은 청전 이상범 화백이 그린 충무공 이순신 영정과 참 많이 닮았다.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이순신 장군이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이순신 장군 추정 초상화가 국내에 정식으로 공개됐다.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여인’으로 알려진 키스와 그의 작품은 30여 년 전 재미 학자 송영달 교수에 의해 국내에 알려졌다. 이번 이순신 장군 추정 초상화도 송 교수가 찾아냈다. 공개되지 않은 키스의 한국 그림을 발굴하기 위해 그의 친인척을 수소문하던 중 캐나다에 거주하던 키스의 조카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꿰뚫어볼 듯 한 눈빛, 반듯한 귀 그리고 거북선 |
이후 송 교수는 이순신 장군 전문가인 박종평 선생에게 감정을 의뢰했고 ,유력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지난 해 국내 일부 언론을 통해 존재가 알려졌지만 완벽하게 복원한 후 한국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미국에서 디지털 작업을 거쳤다.
이렇게 원본에 가깝게 구현된 그림은 이날 출간 된 ‘올드 코리아(Old Korea, 책과함께 펴냄)’ 완전 복원판에 실렸다. 올드 코리아는 엘리자베스 키스가 1946년 펴냈던 책으로, 송 교수가 2006년 처음 번역 출간했다. 이어 이번에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키스 그림을 추가로 찾아내 총 85점의 작품을 책에 실었다. 이순신 장군 추정 초상화도 이에 포함된다.
한국을 사랑한 영국인의 시선 |
키스는 언니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혼자 한국에 남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1921년 9월에는 서울은행 집회소에서 키스 작품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 미술사상 첫 외국인 화가 개인 전시회였다.
키스는 후일 “한국 사람도 많이 전시회에 왔는데 그림 속 자신들의 모습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았다”며 “한국의 노신사들이 그림을 하나 하나 음미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키스는 한국에서 발행하는 크리스마스 씰을 위한 그림도 세 번이나 그렸다.
키스 존재 찾은 송영달, 30년 노력 집대성 |
송 교수가 꼽는 이번 완전 복원판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수채화와 판화를 빠짐없이 실었다는 것이다. 판화 35점, 컬러 수채화 36점, 흑백 수채화 10점, 드로잉 4점이다. 둘째, 키스의 생애와 발자취에 대해 추가로 알게 된 정보를 더 실었다. 마지막으로, 이순신 장군 추정 초상화를 실었다는 점이다.
송 교수는 “완전 복원판이 키스의 그림을 재조명하고, 그와 한국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며 “책에 실린 그림이 생생한 이미지로 전달돼 후대 사람이 보아도 감탄할 정도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