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이제 한국도 주변에 할 말은 해도 될 실력 갖췄다”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 출간
통일 전문가·협상가로 살아온 40여년 정리
"끝도 시작도 없는 통일의 미로 걷는 기분"
"약소국 의식, 민족패배주의에서 벗어나야"
"김여정에 설설 긴다? 우리가 北보다 우월"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창비

“끝도 시작도 없는 통일의 미로를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다”

통일·협상전문가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통일부 장관이)이 지난 세월을 정리한 책을 냈다. 제목은 ‘판문점의 협상가-북한과 마주한 40년’이다.

그는 10일 서울 마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지난 시간을 가수 최진희의 노래 ‘사랑이 미로’ 가사에 빗대었다. ‘끝도 시작도 없는 사랑의 미로’에서 사랑 대신 통일을 넣었다. 현재도 남북, 남북미, 북미 관계가 모두 미로에 갇힌 듯 하다. 하지만 정 수석부의장은 “국민의 힘을 믿는다”고 밝혔다.

지난 해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 앞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수행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익 가장 중요"...은사 가르침 기억
정 수석부의장은 회고록에서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간에 벌어졌던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정리했다. 북한 기준으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 시대가 책 속에 모두 담겼다.


그가 책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은사 고(故) 이용희 서울대 교수의 가르침이다. 이 교수는 “외교의 세계에서는 국가 이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나라 아니면 다 남의 나라다”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정 수석부의장도 우리가 철저히 국익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이제 기대를 거는 것은 국민의 힘”이라며 “한 사람의 지도자와 당국자 몇명의 힘으로 될 일은 애초에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 여론의 힘으로 한미 관계를 슬기롭게 발전시켜가면서 한미동맹과 한미공조가 원칙의 굴레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외교력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미동맹 와해나 주한미군 철수 두려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부터 한미동맹은 미국이 오히려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 됐다”며 “한국 때문에 한미동맹이 깨질 일도 없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일도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불편해지면 동맹이 깨질 것이고, 동맹이 깨지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프레임과 트라우마에서 이제는 벗어나란 것이다.

무엇보다 정 수석부의장은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 정부와 국민”이라며 “상황 주도를 위해서는 습관적으로 미국에 사사건건 허락받듯 물어보는 자세부터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주변 국가들에 할 말은 해도 될 실력을 갖췄다”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엄중함은 태생적으로 불가피하지만 대한민국의 실력은 어느새 이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우리도 ‘큰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르던 관행에서 벗어나고, 약소국 의식’이나 ‘민족패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통일 문제에 대해 실질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주변국의 협조를 끌어내고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가는 한반도의 주인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 자세와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 등을 두고 ‘김여정에 설설 긴다’ 식의 반응이 나오는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북한 내부의 대남 자신감 결여가 극렬한 적대감으로 표출되는 것”이라며 “우리가 북한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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