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4일 미국 해안경비대에 긴급 구조요청이 들어왔다. 남극 탐험에 나섰다가 얼음에 갇힌 러시아 탐사선 ‘아카데믹 쇼칼스키’호와 이 배를 구하러 달려갔다가 역시 발이 묶인 중국 쇄빙선 ‘쉐룽’호에서 보낸 것이었다. 상황이 급하다고 판단한 미국은 쇄빙선 ‘폴라스타(Polar Star)’호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호주 시드니에 정박 중이던 폴라스타는 이튿날 바로 출발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러시아·중국·미국 간 삼각 공조는 이뤄지지 못했다.
폴라스타 도착 전인 7일에 현장 풍향이 바뀌면서 유빙들이 흩어진 틈을 타서 쉐룽호가 열린 바다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폴라스타로서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1976년 취역한 폴라스타는 현존하는 미국의 유일 대형 쇄빙선이다. 1만3,800톤급으로 길이가 122m에 최고 시속은 33km다. 1990년대 이후 러시아 등에서 2만~3만톤급 쇄빙선이 나오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출력을 자랑했다.
디젤·전기·가스 등 세 가지 동력시스템을 갖추고 속도를 낮춰 쇄빙력을 키울 경우 최대 6m 두께의 얼음을 깨면서 전진할 수 있다. 항해 중 바닷물이 얼어붙지 못하게 막는 장비도 있다. 하지만 선체가 노후화돼 취역 30주년인 2006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다가 2013년 리모델링을 거쳐 재취역했다. 새 단장을 했는데도 고장이 잦아 선원들 사이에서는 ‘녹슨 양동이’로 불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대형 쇄빙선 3척을 더 만들어 ‘극지 쇄빙선단’을 2029년까지 구성할 것을 지시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러시아·중국과의 극지 영유권 쟁탈전에서 선봉 역할을 하는 쇄빙선이 절대 열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이 보유 중인 쇄빙선은 폴라스타 등 2척뿐이다. 러시아는 핵 추진 쇄빙선 4척 등 46척이나 된다. 2척을 가진 중국도 추가 확보에 나서 쇄빙 능력이 2025년에는 미국을 능가할 수 있다. 6,950톤급 아라온호 개발로 2009년에야 쇄빙선 보유국 대열에 합류한 우리나라로서는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