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 변경 불허" 서울시 어깃장에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매각 실패

10일 예비입찰 참여 후보 없어 유찰
서울시, 2년간 4,671억원 분할 납부
조원태 "헐값 매각 안 해"…자본잠식 가능성 커져

한진그룹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전경./권욱기자
한진(002320)그룹이 자구안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대한항공(003490) 송현동 부지의 매각이 실패했다.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에 이어 종로구까지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인수를 검토하던 후보들이 모두 의사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심판을 봐야 할 서울시가 선수로 뛰면서 인허가권을 쥐고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일종의 갑질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진행된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매각 예비 입찰(LOI) 제출 마감에 아무도 서류를 내지 않았다. 매각 주관사인 삼정KPMG와 삼성증권은 이날 오후 4시까지 관련 서류를 받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개경쟁 입찰 방식이라 예비입찰에 LOI를 내지 않더라도 본입찰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현재 분위기는 누구도 참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투자설명서(IM)를 받아간 잠재 인수 후보군은 15곳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시내에 대규모로 고급 타운형 주택 공급이 힘든 상황에서 송현동 부지의 입지적 강점을 눈여겨본 시행 전문 기업 등이 관심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규제에 이어 서울시가 용도 변경을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번 공개 매각 작업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보고 있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 인근이라는 특성 때문에 높이 12m 제한, 1종 일반거주지역으로 용적률이 100~200%에 불과하다. 인근에 덕성여고, 덕성여중, 풍문여고 등 학교가 인접해 개발하려면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앞서 대한항공이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으려다 학교 주변에 호텔 설립을 금지하는 학교보건법에 막혀 개발을 포기했고 대한항공 이전 송현동 땅 주인이었던 삼성생명도 미술관을 세우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다.


인허가권자인 서울시는 부지를 직접 인수해 공원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공개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4,671억원에 땅을 사겠다고 대한항공에 제안했고, (강제) 수용절차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만큼 시세대로 매입한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송현동 부지는 시장에서 거론되는 예상대금이 최소 6,000억원 수준이었다.


대한항공은 경쟁입찰이 무산된 만큼 서울시와 협상을 진행하는 한편, 거래 대금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매각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4,670억원에 인수한다면 대한항공이 손에 쥘 돈은 한 푼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송현동 부지는 담보권만 7,000억원이 설정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제값에) 안 팔리면 갖고 있겠다”며 ‘헐값’에는 팔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아울러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사더라도 대금을 2022년까지 나눠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터라 대한항공은 자금 수혈이 미뤄져 부채비율이 상승,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시는 저금리로 급한 자금을 상환할 금액을 보증해 대출해 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채무인 터라 대한항공의 재무 개선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공개적으로 공원화 계획을 밝히며 일부 후보들은 대한항공에게 부지를 매입한 뒤 서울시에 되파는 방안에 대해 문의를 하는 등 부지 매각 실패는 예견됐던 일”이라며 “대한항공은 자구안 중 7,000억원에 가까운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며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투자심사, 시의회 동의 등 관련 절차 이행 후 매입가를 확정해야 해 입찰 참여를 못한 것”이라며 “대한항공 상황을 고려해 송현동 부지의 조기 매입, 부지가 일시 지급을 위해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11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매각 관련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한편 대한항공 노동조합은 지난 1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현동 부지 자유경쟁 입찰을 촉구했다. 최대현 노동조합 위원장은 “송현동 부지 매각은 단순한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용 안정과 회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며 “정부가 필요에 의해 땅을 팔았다면 도의적인 책임을 져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강도원·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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