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구교 인근 완평성 성벽에 남은 ‘7·7사변’ 총격 흔적.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중국 베이징의 노구교(盧溝橋·루거우차오)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1937년 7월7일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7·7사변’이 일어난 곳이 바로 근처이기 때문이다.
당시 만주를 점령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베이징까지 남하한 일본군을 막기 위해 중국군은 영정하 도하의 핵심 루트인 노구교 좌우에 포진해 있었다. 일본군 부대가 이날 저녁 인근 중국군에 시비를 걸어 교전이 벌어졌고 당시 중화민국이 적극 대응에 나서면서 전투는 순식간에 중일 간의 전면 전쟁으로 확대됐다. 이미 노구교라는 이름이 유명했기 때문에 그날의 사건을 ‘노구교사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구교 바로 동쪽에는 ‘완평성’이라는 명나라 말기인 지난 1640년 세운 성이 있는데 성곽 자체는 지금까지 잘 보존돼 있다. ‘7·7사변’ 당시 중국군 지역사령부가 이 성 안에서 성곽을 방패 삼아 교전을 벌였다. 지금도 일부 성벽에는 당시 전투의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중국은 침략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완평성 안에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세웠다. 베이징에서 유일한 대형 항일전쟁기념관이 이곳에 있는 이유다. 또 기념관 앞 광장에는 돌로 새긴 커다란 사자 석상이 있는데 노구교 사자에 빗대 ‘노구교의 깨어난 사자(盧溝獅醒)’라는 이름을 붙였다. 거대한 갈기를 휘날리며 포효하는 사자 모습으로 현대 중국의 부상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글·사진(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