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담] 北김정은, 삐라 막는다고 '핵억제' 미사일 안 쏠까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김여정 한마디에 청와대 핫라인까지 전부 차단
靑, 즉각 '전단 금지'... 탈북자단체는 수사의뢰
삐라 핑계 뒤엔 文평화구상 '無성과'가 더 문제
북미관계 교착에 경제난으로 군사행동 시사
지난달 김정은 "핵전쟁 억제", 리선권 또 언급
개성공단 폐쇄한 뒤 올 여름 무력도발 가능성

김정은. /연합뉴스

북한이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김여정을 중심으로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고 남북 연락선을 모두 끊었다. 이에 청와대와 통일부는 초비상 상태에 빠져 일단 해당 단체들을 경찰 수사에 넘기는 초강수를 뒀지만, 북한이 다시 대화의 장으로 나올 가능성은 현 시점에선 극히 낮아 보인다.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대북 전단을 표적으로 삼았으나 그 이면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 자체에 대한 불만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문 대통령이 장담했던 북미관계 회복 구상이 어그러진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극심한 경제난까지 겹치면서 또다시 ‘벼랑 끝 전술’을 들고 나왔다는 평가다. 실제로 김여정은 남한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또 다른 보복조치까지 예고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앞으로 북한이 개성공단 자산 몰수와 완전 철거, 핵실험을 비롯한 무력도발 등의 단계를 신속히 밟을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관련기사> ▶[단독] 北김여정 '폐쇄' 지시에 남북연락사무소 첫 연락두절

지난 6일 평양시 청년공원야외극장에 모인 북한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탈북자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여정, 연락선 전부 차단하고 文 맹비난

북한은 지난 9일 정오 이후 통일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청와대 핫라인 등을 모두 끊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한 연락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지난 2018년 6~8월 각각의 연락선들이 도입·복구한 지 2년여 만에 처음이었다. 통일부는 북한과 관계가 복원될 때까지 더 이상 연락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북한은 연락선 차단에 그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원색적인 비난도 쏟았다. 지난 11일 대외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에 따르면 리영철 평양시인민위원회 부원은 “평양과 백두산에 두 손을 높이 들고 무엇을 하겠다고 믿어달라고 할 때는 그래도 사람다워 보였고 촛불민심의 덕으로 집권했다니 그래도 이전 당국자와는 좀 다르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선임자들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오수봉 옥류관 주방장은 13일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에서 “(문 대통령이) 평양에 와서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안보특보. /연합뉴스

前장관들 “전단 못 막은 건 우리 정부 잘못”

김여정의 경고가 현실화되자 현 정부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통일정책 원로들의 성토가 곧바로 이어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안보특별보좌관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들은 북한의 불만에 정부가 더 적극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9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20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초청 강연에서 “여당과 정부가 전단 살포 금지법을 강력히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전단 살포를 막지 못한 것은 정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의료기기와 의약품 협력에 나서면 2억 달러면 충분할 것”이라며 9·19 남북 군사합의와 평양공동선언 합의 이행,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 개최까지 네 가지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전직 통일부 장관인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같은 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삐라 살포를 강행할 때는 경찰 병력이나 군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11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우리 정부가 판문점 선언, 평양 선언을 했지만 약속을 지킨 것은 별로 없다”며 “김여정 부부장이 사실상 남북 관계 개선에 제일 앞장섰다”고 주장했다. 현 남북관계를 개선할 방안에 대해선 “비밀회동을 하듯이 두 정상이 한 번 만나서 좀 하여간 돌파구를 좀 마련해야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화들짝 놀란 靑, NSC까지 나서 ‘삐라 금지’

청와대와 정부는 북한의 돌발 조치에 누구보다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청와대는 고심 끝에 11일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계속 준수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며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 직접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김 사무처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대북전단·물품 살포 행위를 앞으로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역시 청와대와 발맞춰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을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해 달라고 의뢰했다. 통일부는 두 단체가 남북교류협력법·공유수면법·항공안전법 등을 위반했다고 봤다. 물자를 북한으로 반출하면서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았고 드론 역시 정부에 미리 신고하지 않은 채 띄웠다는 것이다. 북측에 도달하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진 전단과 페트병은 바다에 오염물질을 버린 행위로 해석했다. 북한에 전단이나 쌀을 보냈다는 이유로 정부가 해당 단체나 개인을 수사기관에 의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여정. /연합뉴스

올 여름 개성공단 폐쇄 후 무력도발 가능성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 여름께 추가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북미관계에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국제제재로 인한 만성적 경제난에 대해 불만이 이미 팽배한 데다 완전한 대북 전단 살포 금지 조치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추가 도발의 시기는 6~8월 사이, 그 순서는 연락선 차단을 시작으로 개성공단 완전 철수,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여정과 김영철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고 전했다. 남측에 대한 추가적인 보복조치가 있을 것을 암시한 것이다.

여기에 지난 12일 밤부터 13일까지 북한 장금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부터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부장, 김여정 등이 잇따라 담화를 내며 이 같은 추정에 쐐기를 박았다. 장 통전부장은 ‘북남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제목의 첫 담화를 내고 “이번 사태를 통하여 애써 가져보려 했던 남조선 당국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다”고 밝혔다.

김여정은 한 발 더 나아가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며 군사행동에 즉각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여정은 “우리 군대 역시 인민들의 분노를 다소나마 식혀줄 그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단행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발사체. /연합뉴스

‘핵발전’ ‘핵전쟁’ 언급에 군사대결 위기 최고조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지난달 24일 김정은 주재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결과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조만간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실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당시 북한 매체는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핵전쟁’이 언급됐다며 “국가 무력 건설과 발전의 총적 요구에 따라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한층 강화하고 전략 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이 제시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져온 리병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군수공업부장을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여기에 리선권 북한 외무상이 지난 12일 “우리 최고지도부는 국가 핵발전 전략을 토의하고 미국의 장기적인 핵전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하였다”며 ‘핵발전’ ‘핵전쟁’ 등을 또 언급했다. 향후 도발 행위에 대한 명분으로 ‘미국 책임론’을 앞세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후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까지 13일 “남조선은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며 북핵 논란에 한 번 더 불을 지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연락사무소는 조만간 폐쇄할 것으로 보이며 다음 행동은 대북 전단 풍선이 다시 보일경우 군사적인 도발도 불사하겠다는 계획이 이미 수립돼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군이 북한주민의 분노를 다소나마 식혀줄 그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단행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으니 그냥 대충 넘길 상황은 아닌 듯하다”고 걱정했다. .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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