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담] "평화가 온다?" 文정부의 씁쓸한 6·15 '혼파티'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평화가 온다' 슬로건으로 20주년 행사 풍성
北은 무반응 넘어 "철면피한 광대극" 맹비난
'南 연합제와 北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지향'
北무력도발·주한미군 감축 위기로 크게 퇴색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북한이 남한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연락선을 모두 끊는 등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이틀 뒤 우리 정부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독자적으로 기념한다. 애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만 아니면 북한과의 교류 재개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시점에서 기획한 만큼 행사 자체는 꽤 성대하게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의 핵개발·무력 도발 가능성부터 미국의 주한미국 철수설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행사의 의미는 크게 퇴색될 것이란 진단이 우세하다. ‘평화가 온다’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오히려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지에 더 관심이 쏠리는 형국이다. <관련기사> ▶[단독] 北김여정 '폐쇄' 지시에 남북연락사무소 첫 연락두절

6·15 20주년 온라인 이벤트인 ‘평화챌린지’ 포스터. /자료제공=통일부

슬로건 ‘평화가 온다’... 공중파 방송 등 다채로운 행사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주간은 코로나19 정국에서도 ‘언택트(비대면)’ 방식을 채용한 다채로운 행사들이 진행된다. 슬로건은 ‘평화가 온다’다. 통일부는 지난 5월28일 이 같은 계획을 선보이면서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계기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에 대한 국민적 의지를 모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선 13일 KBS의 ‘불후의 명곡’에서 6·15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방송을 진행하고 MBC를 통해 오는 18일 ‘전쟁을 넘어서 평화로’라는 주제로 평화경제 국제포럼을 방영한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사회를 맡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등이 대담자로 출연할 예정이다.

20주년 당일인 15일에는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통일부·서울시·경기도·김대중평화센터가 함께는 오프라인 행사 ‘시민과 함께하는 6·15 기념식’을 연다. 일반 시민들이 경기 파주 임진각에서 남북출입사무소 일대를 걷는 ‘평화산책’ 프로그램은 14일로 예정됐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됐다.

민간에서도 김대중평화센터가 6·15 기념 학술회의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특별위원회가 국회에서 6·15 20주년 기념식을, 민족통일중앙협의회가 6·15 기념 통일심포지엄을, 6·15실천민족문학작가회의 등이 도라산역에서 문익환 시비 제막식과 6·15 기념 민족문학제를 15일 당일 각각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공들였지만, 北무반응에 결국 혼자 축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행사는 당초 우리 정부 입장에서 남북이 함께 하길 간절히 바랐던 행사다. 정부는 민간 단체 역량까지 동원해 북한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북한은 일절 응답하지 않았다. 결국 통일부는 행사를 한 달 남긴 지난달 중순 공동행사를 포기해야 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달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민간단체가) 연초에 북쪽에 (공동행사를) 제의했는데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고 밝혔다. 같은 달 28일에는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아쉬워 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됐다. 선언문에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킨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남북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1~2008년 공동 행사를 개최했지만 2009년부터는 이 행사를 더 이상 열지 않았다.

김정은. /연합뉴스

北 “6·15 20주년 행사는 철면피한 광대극” 맹비난

문제는 독자 행사를 결정한 이후 남북관계가 더 악화돼 이제는 완전히 파국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지난달만 해도 남북공동행사가 무산된 이유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북한의 실망,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국경 폐쇄 등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즉, 남북 간 문제가 아닌 외부 요인 탓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달 들어 북한이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시 삼으며 상황은 반전됐다. 남북 연락선이 다 끊긴 것은 물론 북한의 추가 보복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북한은 심지어 우리나라의 6·15선언 20주년 독자 행사조차 낯뜨거운 논조로 조롱했다.

북한 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지난 8일 통일부의 6·15공동선언 20주년 행사를 “철면피한 광대극”으로 표현하며 “기념 행사나 벌인다고 해서 북남관계를 파탄에 몰아넣고 조선반도 정세악화를 초래한 범죄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6·15공동선언 행사를 두고 “남한 당국이 남북관계를 파탄에 몰아넣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벌이는 것”이라며 ‘그 따위 놀음’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북한 장금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은 12일 밤 ‘북남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제목의 담화를 내고 “이번 사태를 통하여 애써 가져보려 했던 남조선 당국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다”고 밝히며 남북관계 파탄 상태임을 재천명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대응에 대해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 당국에 있어서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조선 속담이 그른 데 없다”고 비꼬았다.


리선권 북한 외무상. /연합뉴스

연일 북핵 위협 발언도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최근 핵개발과 무력도발 가능성까지 연일 암시하고 나섰다. 리선권 북한 외무상은 지난 1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우리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최고지도부는 력사적인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서 조성된 대내외정세에 부합하는 국가 핵발전 전략을 토의하고 미국의 장기적인 핵전쟁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나라의 핵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하였다”며 “폼페오(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를 비롯한 미국의 정객들은 입만 벌리면 미국의 변함없는 목표는 조선반도 비핵화라고 줴쳐대고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에서 나온 “핵전쟁 억제” 발언을 또 언급하면서 향후 도발 행위에 대한 명분으로 ‘미국 책임론’을 앞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도 13일 “남조선은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며 “조미(북미) 사이의 문제, 더욱이 핵 문제에 있어서 논할 신분도 안 되고 끼울 틈도 없는 남조선 당국이 조미대화의 재개를 운운하는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치는데 참 어이없다”고 주장했다.

전날 “정부는 북미대화의 조속한 재개와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는 외교부 당국자의 말을 조롱한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주한미군 철수설 흘리는 美까지 겹악재

‘평화가 온다’는 슬로건에 걸맞지 않은 흐름은 악화된 남북 관계뿐이 아니다. 미국 안팎에서는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총체적 난국에 빠지다 보니 이번 20주년은 자축보다는 문 대통령 등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느냐에 여론의 관심이 더 쏠리는 분위기다

리처드 그리넬 전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주둔 미군을 줄이겠다는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주독 미군 감축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축 대상 국가로 한국과 일본,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라크를 언급했다. 현재 한국엔 2만8,500여 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도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불안 요소가 커진 셈이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사실상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 일단 ‘버티기 전략’에 들어간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캠프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진 그리넬 전 대사는 “미국 납세자들은 외국의 안보를 위해 많은 돈을 지출하는 데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 국방부는 “한미 간 논의된 사항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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