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구곡 하류에서부터 올라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제1곡인 선유동문(仙遊洞門)이다.
남쪽 지방에 장마가 상륙했다. 이제 20일쯤 지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장마전선이 쏟아낸 빗줄기는 산을 적시고 계곡을 타고 내릴 것이다. 물이 풍성해진 계곡을 즐기기에는 바로 이맘때 장마 끝물이 단연 최고다. 사람들은 ‘계곡’ 하면 강원도를 떠올리지만 사실 서울에서 가까운 계곡의 천국은 충북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청주로 빠져나가 동쪽으로 나아가면 괴산군에 다다르는데, 바로 이곳 괴산이야말로 계곡의 보고라 할 만하다.
기자가 괴산군의 계곡을 으뜸으로 치는 것은 속리산을 타고 내리는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세간의 유명세야 화양계곡이 한 수 위지만 선유구곡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선유구곡은 화양동계곡과 함께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고 꼽았을 정도다.
화양구곡에 발을 담그려면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증평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괴산읍을 거쳐 문광면 광덕리에서 517번 지방도를 타고 송면리까지 가야 한다. 바로 이곳의 동쪽이 선유동이고 서쪽은 화양동계곡이다.
선유구곡은 괴산군 송면리에서 동북쪽으로 걸쳐 있는 계곡이다. 퇴계 이황이 송정마을에 있는 함평 이씨댁에 들렀다 경치에 반해 아홉 달을 돌아다니며 9곡의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겼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선유동이 물놀이에 좋은 것은 산을 타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편안한 도로를 걸으면서 흐르는 계곡물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계곡 상류인 후문이나 하류인 정문으로 모두 이어져 선유동의 비경을 힘들이지 않고 만끽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보은 속리산과 문경 대야산 사이를 지나 경북 땅에 다다르게 되는데, 하류에서부터 올라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제1곡인 선유동문이다. 선유동문 계곡 입구에는 큰 바위가 버티고 서 있고 바위에는 ‘仙遊洞門(선유동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맘때가 되면 물놀이객들이 몰려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는 곳이다.
제2곡은 경천벽(擎天壁)으로 계단처럼 쌓인 큰 바위가 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화양계곡 쪽에도 같은 이름의 ‘경천벽’이 있는데 이곳에 비하면 여성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평가다. 제3곡에 해당하는 학소암(鶴巢岩)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바위 사이로 소나무가 비집고 서 있는데 옛날 이곳에 푸른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을 조금 지나면 아래가 뾰족하고 위는 편평한 빗살무늬토기 모양의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곳이 4곡 연단로(鍊丹爐)다. 연단로 바위 위로 오르면 가운데가 절구처럼 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신선들이 이 웅덩이에서 먹으면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된다는 ‘금단’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바위 아래는 얕은 소(沼)가 형성돼 있어 잠시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기에 안성맞춤이다.
5곡 와룡폭(臥龍爆)은 작은 폭포 아래 물이 고여 제법 큰 소를 이루고 있다.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가 용이 포효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는데 소 아래에 고인 물은 오히려 평온한 모습이다.
제6곡 난가대(爛柯擡)는 이름이 걸작이다. 문드러질 ‘난’자에 도낏자루 ‘가’ 자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 나무꾼이 나무하러 가는 길에 바위 위에서 신선들이 바둑 두는 것을 잠깐 구경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도낏자루가 썩어 없어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7곡 기국암(碁局岩)도 바둑과 연관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충북에 살던 나무꾼들은 시간이 많았는지 아니면 바둑의 고수들만 있었는지, 편평한 바위 위에서 신선들이 두는 바둑을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5대손이 살고 있더라는 전설이 이어져 내려온다. 잠깐 한눈판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8곡 구암(龜岩)은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그 모습이 영락없이 고개를 쳐든 거북 모양이다.
제8곡 구암(龜岩)은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그 모습이 영락없이 고개를 쳐든 거북 모양인데다 바위가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거북의 등판을 연상시킨다. 9곡 은선암(隱仙岩)은 신선이 숨어 살던 곳이라는 의미로 두 개의 바위 사이에 10여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있다. 옛날 옛적 퉁소를 불던 신선이 머물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9곡 은선암(隱仙岩)은 신선이 숨어 살던 곳이라는 의미로 두 개의 바위 사이에 10여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있다.
산을 넘어 경북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문경에도 같은 이름의 선유동 계곡이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충북 쪽 뺨치게 아름다워 자태를 비교해볼 만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비교를 겸한 트레킹을 권해본다. /글·사진(괴산)=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