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진 에이피씨테크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광진구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미세먼지는 물론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바이러스까지 잡을 수 있는 축광식 광촉매 기술이 적용된 공기청정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지난 2015년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식물연구소. 버섯 종균실 등 연구실 곳곳에 광촉매 공기청정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당시 이곳을 방문한 김승진 에이피씨테크 대표는 한 연구원으로부터 ‘유해한 식물성 박테리아를 없애 버섯종균 성공률이 기존 30%에서 80~90%까지 높아졌고 지긋지긋한 악취도 잡았다’는 말을 들었다. 김 대표는 “평생 몸담았던 산업설비 제어시스템의 부식 방지를 위해 광촉매 기술을 접목하려고 갔다가 광촉매의 여러 쓰임새에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당시 이 기술을 개발한 현지 벤처 대표는 김 대표에게 공기 중 떠다니는 바이러스까지 제거하는 효과를 봤다며 해외 공인기관의 시험성적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양대 공대 출신인 김 대표는 LG산전에 근무하다가 40대 초반부터 상장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를 하며 산업설비 통합관제 시스템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미국 해리스사에서 각각 6개월씩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다. “미국 연수 중 해리스의 오픈된 소스·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전력원격감시제어장치의 국산화를 위한 응용·개발에 자신감을 가졌죠. 국산화하면 해리스에서 수입하던 가격의 반값 이하에 팔아도 큰 이익이라고 보고 회사에 국산화 투자를 많이 건의했습니다.” 결국 그는 한전과 공동으로 원격전력제어시스템을 국산화한 것을 시작으로 평생 교통관제 시스템, 열차신호장치, 홍수해 경보 시스템, 정수·하수처리장 공정제어, 원자력발전소 공조모듈 등 산업설비 제어시스템을 속속 국산화해 가격을 많이 낮추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어시스템 안의 전자회로로 이뤄진 컨트롤패널의 부식연한이 짧아 고민하다가 퇴직한 뒤 50대 후반에 창업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광촉매 기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해병대에서 ‘안 되면 될 때까지, 무에서 유를’이라는 구호를 새기며 철이 들었다. 지금도 책임감이 큰 편인데 열정과 패기도 20~30대보다 넘친다”고 자신했다.
김승진 에이피씨테크 대표가 축광성 광촉매를 구성하는 비드(오른쪽)와 그것이 촘촘히 박힌 패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애초에 러시아의 광촉매 반응기 부품을 수입해 공기청정기를 조립하면서 점차 패널부식방지 등 다양한 용도로 기술을 국산화하려고 했으나 자체 국산화로 방향을 틀었다. 러시아 측에서 수입의 대가로 50만달러 예치를 요구하고 시장성도 확신하지 못해 협력이 틀어진 것이다. 당시 국내 광촉매 선두업체 두 곳에 광촉매 반응기 외주개발을 의뢰한 것도 성능이 균일하지 않고 데이터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가 그만뒀다. 일본의 광촉매 원액을 들여와 직접 반응기를 개발하려고 했던 것도 실패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3년가량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퇴직금이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도 다 써 자식들한테 투자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그래도 주변에서 그의 가능성을 알아줘 85명으로부터 1인당 200만원씩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하며 다소 숨통이 트였다. 김 대표는 “일본이 광촉매 코팅 기술 등 보호장벽이 높아 러시아에서 원천기술을 비교적 저렴하게 이전받으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국산화 과정에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따랐다”고 술회했다.
그러다가 2017년 세계 최초의 축광식 광촉매라는 신소재 원천 연구를 하던 김정식 서울시립대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의기투합하며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한다. 김 교수한테 원천특허를 이관받고 기술자문계약을 맺은 뒤 잇단 실패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결합해 응용·개발 연구를 지속하며 2년 만에 4세대 축광식 광촉매 기술을 산업화한 것이다. 창업 이후 연구개발(R&D)에 30억원가량을 쏟아부은 성과였다. “대학 연구실에서 세계 최초의 축광식 광촉매 원천기술을 보유했지만 광촉매 비드(구슬) 알갱이를 만들 때 가루가 떨어지고 물에 약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공동 R&D를 통해 가루도 안 떨어지고 수용액에도 녹지 않게 발전시킨 것이죠.” 이 기술은 김 교수팀이 실험한 결과 애초에 접촉했던 러시아 제품보다 자외선에서 1.3배, 가시광선에서 2.5배, 어두운 곳에서 3배의 효과를 나타냈다.
1김승진 에이피씨테크 대표가 15일 서울 광진구 서울사무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미세먼지는 물론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바이러스까지 잡을 수 있는 축광식 광촉매 기술이 적용된 공기청정기와 비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대표는 “축광식 광촉매 기술을 먼저 공기청정기(에어닥터)에 적용했더니 미세먼지는 물론 휘발성 유기화합물(VOC)과 바이러스까지 친환경적으로 분해한다”며 “올 초 한국화학연구원에서 고양이과 코로나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실험해 바이러스 제거 효과를 봤다”고 소개했다. 당초 그가 접촉한 러시아 기술은 빛과 공기가 오갈 수 있는 0.8㎜짜리 다공성 유리 알갱이에 이산화티타늄(TiO2)을 혼합해 만든 3세대 광촉매 기술이었는데, 알루미늄 규소 등 10여가지 복합소재로 만든 축광체까지 넣어 첨단기술을 완성했다. 그는 “러시아와 미국은 국제우주정거장의 식물이 VOC로 인해 자라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며 “앞서 부직포와 철망에 광촉매를 액체로 만들어 코팅하는 일본의 기술은 1세대, 구슬 형태로 코팅하는 미국의 기술은 2세대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일반 광촉매가 자외선으로만 분해가 이뤄지는 것과 달리 가시광선과 암실(어두운 곳)에서도 효과를 발휘하는 게 특징이다. 미세먼지와 VOC는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친 상황에서 어린이집·유치원·학교·노인요양시설·병원·관공서·체육시설·산업현장 등에서 유용한 셈이다. 사물인터넷(loT)을 접목한 ‘통합관제 공기청정기’로 손쉽게 원격제어도 가능하다. 고장 여부나 교체부품이 필요할 때도 미리 알려준다.
김 대표는 축광성 광촉매 소재·부품회사로 키운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올해 차량용에어필터·마스크·탈취제 시장에 진출하기로 하고 유럽의 CE, 미국의 UL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마스크의 경우 부직포에 광촉매를 코팅해 필터만 교체하는 식으로 만들어 오래 쓰게 할 방침이다. 내년부터 아파트·오피스텔·호텔 등 공기청정기 빌트인과 산업설비 제어시스템 컨트롤패널 부식방지 등으로 용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이 회사는 하수처리장에 공정별로 광촉매 기술을 시범적용해 전자회로의 부식 연한을 기존 5~7년에서 10년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김 대표는 “제어시스템의 부식 문제는 교통신호설비·철도설비·전력 시스템·CCTV·공장·화학플랜트·하수처리시설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아직 패널부식방지 기술이 없어 블루오션”이라고 했다.
중앙통제센터와 변전소 컨트롤패널 사이 구간 암호화 기술도 정부 R&D 과제를 받아 성공해 상업화를 진행하고 있다. 구간 암호화 기술은 CCTV·IoT 기기·스마트교통시스템·산업설비·자율주행차·5세대(5G)의 해킹 방지에 필수적이다. 그는 “산업설비를 암호화하는 데 축광식 광촉매 기술을 적용하면 가격을 현재의 10%선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승진 에이피씨테크 대표가 축광성 광촉매를 구성하는 비드를 들고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광촉매의 핵심으로 희토류로 만드는 축광체도 김 교수 연구실에서 기존 방식과 다른 연소반응법으로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나노 단위까지 입자를 만들어 응용 분야가 더 넓어지고 액체로 만들어 도료나 섬유 코팅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내년에 10억~20억원을 들여 생산설비에 밀폐진공 전기로를 만들면 상업화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서 현재 축광체를 연 2,000억원가량 수입하는 현실에서 일정 부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 대표는 벤처캐피털들로부터 이달 중 50억원 투자유치를 마무리하는 대로 충북 충주의 공장을 확장 이전해 생산능력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무엇보다 모 자동차사로부터도 투자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앞서 이 회사는 한 택시회사에 관련 기술을 시범적용해 원가는 좀 비싸지만 공기청정·탈취·가습 효과가 있어 머리가 맑아진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회사 매출의 1.5%를 서울시립대에 지급하기로 했는데 김 교수가 대학에 축광성광촉매센터를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며 “이익의 50%는 재투자, 25%는 주주 배분, 25%는 직원복지와 사회환원이라는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밸류체인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해 애로가 있다”면서도 “미세먼지나 감염병이 만성이 된 상황에서 광촉매의 퍼스트무버(선도자)라는 자긍심이 있다”며 활짝 웃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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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경기도 고양 △1982년 한양공대 전자통신학과 학사 △2011년 아주대 교통공학 석사 △1981~1990년 LG산전(현 LS산전) 자동화사업부 기획과장 △1983년 KAIST 파견교육 △1984년 미국 GE·해리스 연수 △1990~2010년 비츠로시스 대표이사 부회장 △2010~2013년 한일디엔에스 대표 △2014년~ 에이피씨테크 대표
축광성 광촉매 접목 공기청정기 살균효과 탁월...고양이과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제거
/김승진 에이피씨테크 대표가 15일 서울 광진구 서울사무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축광식 광촉매가 고양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거한다는 한국화학연구원의 시험 데이터와 축광성 광촉매 비드를 들고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 /성형주기자
에이피씨테크가 김정식 서울시립대 교수의 원천연구를 바탕으로 공동 연구개발(R&D)을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업화한 축광성 광촉매는 스스로 빛을 머금고 내뿜는 점이 특징이다. 어둠 속에서 소재인 비드(구슬)를 보면 빛이 난다. 자외선(UV)에만 반응하는 기존 광촉매와 달리 가시광선과 암실(어두운 곳)에서도 반응이 일어난다.
아주 고운 입자를 뭉쳐 구슬 모양으로 만든 축광성 광촉매가 빛을 받거나 어두운 곳에 있어도 자연스레 산화와 환원 반응이 일어난다. 전자가 이탈해 양자만 남아 공기 중 수분과 융합해 OH 라디칼(인체에 무해한 산화력이 뛰어난 살균물질)이 생성된다.
공기 중 미세먼지는 물론 포름알데히드 등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물(H2O)이나 질소(N)·이산화탄소 등으로 분해한다. 정전기나 필터(부직포)로 미세먼지 위주로 잡아내 초미세먼지를 거르지 못하고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살균기능도 미흡한 기존 공기청정기와는 원리가 다르다. 필터 유지보수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연 1회 자외선램프만 교체하면 된다. 축광식 광촉매 기술을 도입한 공기청정기(에어닥터)를 사용할 경우 3.3058㎡(1평) 안팎인 자동차에서 20분 정도면 80%의 공기가 정화된다. 나아가 A형독감이나 리노바이러스(코감기·목감기), 고양이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제거할 수 있다. 지난 3월 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CEVI)의 시험성적서를 보면 비드 모양의 축광성 광촉매 물질에 10ul액의 고양이과 코로나바이러스를 떨어뜨려 어두운 곳에 두거나 자외선을 비췄더니 1분 뒤 바이러스가 비드에 흡착돼 91% 제거효과가 나타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광촉매에 의한 바이러스 불활화가 이뤄지며 5분 뒤 99% 이상 감소했다.
광촉매는 당초 1967년 도쿄공대에서 물을 전기 가압하지 않은 상태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 수소와 산소로 분리되는 것을 보고 발견했다. 금속산화물 중 일부가 자외선을 받으면 광분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금속산화물 중 가장 경제적이고 산화력이 뛰어난 것은 이산화티타늄이다. 나노기술이 뛰어난 일본에서부터 인공 광촉매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러시아는 우주기술을 활용해 광촉매 기술을 발전시켰다. 광촉매 필터를 만들어 공기청정기에 탑재하거나 이산화탄소 저감 목적으로 광촉매 벽돌이 나오기도 했다. 아스팔트의 미세먼지 성분인 질소산화물을 광분해해 나오는 질산염을 하수처리장에서 걸러내는 아이디어도 시도되고 있다. 아파트에서 광촉매 페인트도 시범적으로 적용돼 동당 100그루의 나무를 심은 효과를 내고 있으나 일반 페인트보다 비싼 게 단점이다.
김승진 에이피씨테크 대표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국내에서 광촉매 붐이 일 때 벽지나 자동차에 코팅을 했으나 코팅 기술 미흡으로 떨어져 나가 불신을 초래한 적이 있다”며 “이제는 4세대 수준의 축광성 광촉매 기술을 상업화해 국제특허도 출원하며 해외 진출도 모색할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