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7일 오전 춘추관에서 북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왼쪽),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17일 우리 정부의 비공개 특사 파견 제안을 거절한 사실도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청와대와 여당, 국방부·통일부가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그동안 북한의 도 넘는 비난에도 대응을 자제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남북이 소통과 협력으로 직면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취지로 밝힌 기념사를 언급하며 “북한이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윤 수석은 “북측의 이런 사리 분별 못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감내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며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북측이 우리 정부의 특사 제안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북특사 파견을 비공개로 제의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며 대북특사 파견 제안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수석은 마지막으로 “최근 북측의 일련의 언행은 북에도 도움 안 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북측은 앞으로 기본적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금도를 넘었다”며 날을 세웠다. 그는 “국가 간 외교에는 어떤 상황에도 넘지 말아야 할 금도가 있는데, 판문점 선언의 상징을 폭파하는 북쪽의 행동은 금도를 넘은 것”이라며 “그동안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해 온 남북한 모든 사람의 염원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에게 “더 이상의 도발을 중지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하면서 우리 정부에도 “북한의 어떠한 추가 도발에도 강력히 대응할 태세를 갖추라”고 주문했다.
전동진 합참 작전부장이 17일 오전 국방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오늘 북한군 총참모부에서 그간의 남북합의들과 2018년 판문점선언 및 9.19 군사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각종 군사행동 계획을 비준받겠다고 발표한 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와 통일부도 달라진 청와대, 여당의 태도에 즉각 반응했다. 국방부는 이날 북한이 사실상 9·19 남북군사합의의 파기를 예고한 데 대해 “우리 군은 오늘 북한군 총참모부에서 그간의 남북합의들과 2018년 판문점선언 및 9.19 군사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각종 군사행동계획을 비준받겠다고 발표한 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실제 행동에 옮겨질 경우 북측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일부는 ‘응분의 책임’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북한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서호 통일부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오늘 북측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발표를 통해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을 군사 지역화한다고 밝힌 점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오늘 북측의 발표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 이전의 과거로 되돌리는 행태이자 우리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북측은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추가적 상황 악화 조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당정청의 이같은 대응은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 온 태도와 비교했을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장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남한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뒤 옥류관 주방장까지 동원해 “평양에 와서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퍼부었다.
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2시 50분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무너진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정부는 김 제1부부장의 첫 담화 당시 “대북전단(삐라)는 백해무익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후 계속된 비난과 막말에도 “협력으로 풀자”는 기조를 유지했다. 지난 1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는 대북 전단·물품 등의 살포에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열렸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반응 없는 북한에게 화해 메시지를 보내며 ‘달래기’를 시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노력을 잘 알고 있다”며 “소통을 단절하고 긴장을 조성하며 대결의 시대로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협력으로 풀어가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북한의 일방적 도발이 지속되자 더 이상 이를 묵인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연락사무소 폭파는 단순히 남북 합의를 깨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 국가의 재산을 침해한 것이며, 이후 추가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대변인 발표문을 통해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지역에 군부대를 재주둔시키겠다고 밝혔다. 또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복구와 서남해상 전선 등 전반적 전선에서 군사훈련을 재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해 사실상 9·19 군사합의를 파기할 뜻을 전했다.
김여정(가운데)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