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캡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광’인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죠. 트럼프는 하루에 십수 건의 트윗을 쓰는 것도 모자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장관 등의 해고와 관세 인상 등의 정책도 트위터를 통해 가장 먼저 밝히는 등 취임 이후 트위터에 대해 유별난 애정을 줄곧 드러내 왔습니다.
그런 트럼프가 요새 즐겨 쓰는 트윗이 있습니다. 바로 ‘로앤오더(LAW & ORDER)’입니다. ‘법과 질서’라는 뜻의 이 트윗을 그는 몇 주 전부터 수차례에 걸쳐 꾸준히 작성하고 있는데요, 이 트윗은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스스로를 ‘당신의 법과 질서의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그가 이 문구를 계속 사용하자 동명의 TV 드라마 주인공인 마리스카 하지테이가 “독재와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거겠지”라고 답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로앤오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문구에 무슨 의미가 있길래 트럼프가 이를 반복해서 언급하는 걸까요. 현지 언론들을 통해 확인해봤습니다.
/트위터 캡쳐
‘로앤오더’의 역사
사실 ‘로앤오더’는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문구입니다. CNN에 따르면 리처드 닉슨부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등 공화당 출신의 전임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슬로건이기 때문이죠. 먼저 닉슨은 1968년 선거 운동 당시 전당대회 등에서 “로앤오더”를 반복해서 말하며 자신의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하고, 젊은 폭도들과 이들에 대항하는 경찰의 모습을 담은 TV 광고를 송출합니다. 무너지는 법과 질서를 자신이 잡겠다는 거였죠. 결국 그는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닉슨은 잘 알려진 것처럼 흑인을 ‘검둥이놈들(Negro bastards)’라고 부르고 ‘개’처럼 산다고 말하는 등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사실이 퇴임 이후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닉슨 외에 레이건 대통령도 1960년대 말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이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활용했고, 이후 1981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에도 이 메시지를 사용합니다. 레이건 역시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유엔 대표단을 ‘원숭이’라고 지칭한 사실이 지난해 국가기록원의 공개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1989년 취임한 아버지 부시도 선거 유세 과정에서 ‘로앤오더’를 이용합니다. 부시도 닉슨처럼 광고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요, 당시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은 흑인 윌리 호튼이 매사추세츠의 주말 일시 출소 프로그램을 통해 외출한 뒤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고 그의 남자친구를 살해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을 광고에 담습니다. 이는 상대후보였던 마이클 두카키스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죠. 이 광고는 ‘주말 감옥 출입증, 두카키스는 범죄자다(Weekend prison passes, Dukakis on crime)’로 끝을 맺습니다. 흑인 범죄자와 백인 피해자를 명확히 보여주는 방식의 이 광고는 대표적인 인종차별적 광고라는 평을 받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당시 부시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와 관계없이 이 캠페인이 인종에 기반을 둔 정치를 더욱 부추겼다고 평가했습니다.
1988년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 광고의 한 장면/유튜브 캡쳐
향수 추구하는 트럼프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사회가 불안한 시기에 나타났다는 겁니다. 특히 지금의 상황은 닉슨이 선거를 치르던 시절과 비교됩니다. USA투데이는 지금 인종 간의 긴장감으로 인해 발생된 불안이 과거 1968년을 상기시킨다고 했는데요, 1968년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벌였고 대통령 후보였던 닉슨은 이후 유세 과정 내내 ‘로앤오더’를 외쳤습니다. 물론 흑인 사회의 지도자였던 킹 목사와 플로이드가 같지는 않죠. 다만 그간 인종차별에 억눌려있던 흑인 사회의 분노를 촉발했다는 점에서는 두 사건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도 있을 겁니다.
가디언지는 이 시기에 베트남전쟁과 민주당의 대선 예비후보이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의원의 암살사건, 10만 명이 사망한 홍콩 독감까지 겹치면서 당시 미국 사회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며, 1964년 민권법 제정으로 유색인종이 투표권을 얻게 된 것을 불안해하는 백인들도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합니다.
리처드 닉슨 미국 전 대통령/AP연합뉴스
트럼프가 노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반인종차별 시위, 경제적 불안 등이 쌓인 지금 사회에서 ‘로앤오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인종 간의 갈등을 부추겨 백인들의 결집을 추구하겠다는 거죠. 트럼프는 플로이드 사망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격화되자 시위대를 ‘아나키스트’나 극좌집단인 ‘안티파’라고 칭하며 ‘로앤오더’를 외쳤죠. 심지어 트위터에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고 적기도 하며 시위대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현지에서는 트럼프의 이런 점을 과거 닉슨과 아버지 부시 시절과 비교합니다. 아버지 부시의 에세이를 편집한 마이클 넬슨은 과거 NYT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면에서 윌리 호튼 광고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트럼프의 거침없는 트윗과 코멘트를 1.0 버전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CNN의 시사평론가인 크리스 실리자는 트럼프가 ‘로앤오더’를 강조하는 것은, 과거 대통령들이 미국 내 소수 집단에 의해 자주 발생하는 불복종을 억누르기 위해 법치주의를 고수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트럼프가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라는 문구를 즐겨 사용하는 것도 닉슨을 떠올리게 한다는 거죠. 이 문구는 지난 1969년 닉슨이 반전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며 대중에 잘 각인됐습니다.
지난해 8월 1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유세 현장을 찾은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오는 11월 선거에서 트럼프의 이런 전략은 과연 통할까요. 먼저 NYT는 닉슨과 트럼프의 전략이 다르다며 이 전략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닉슨은 당시 ‘로앤오더’ 외에도 ‘우리 함께 가자(bring us together)’ 슬로건을 동시에 내세우는 등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지금 트럼프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거죠. 사우스캐롤라이나대의 명예교수인 댄 T 카터 명예교수는 “로앤오더를 지지하는 것과 폭력 시위대를 규탄하는 것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균형을 추구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반대의 시선도 있습니다. 사회분석가인 에두아르도 포터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1968년처럼 백인의 공포를 촉발시킬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는 2045년에는 미국 내에서 백인이 인구 측면에서 다수가 아니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두려움이 백인들에게 작용한다는 거죠. 특히 다문화 공동체에서 생활한 경험이 많은 40세 미만의 미국인들보다 나이가 많고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이들이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16년 11월 7일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선거 유세 후 자신을 대통령으로 칭한 미국 시사잡지 뉴스위크에 사인을 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해 이 같은 표지를 인쇄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해당 잡지를 전량 폐기했다. /AFP연합뉴스
물론 이는 예상에 불과합니다. 지난 선거 당시 미국 언론은 당시 상대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당선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보도하는 등 트럼프의 완패를 예상했으나 결과는 반대였죠. 이처럼 예상을 뒤엎으면서 당시 힐러리에 ‘마담 프레지던트’라고 적은 잡지를 인쇄했던 뉴스위크는 해당 잡지 몇십만 부를 전량 폐기하는 어이없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미국 대선까지는 이제 5개월가량이 남았습니다. 과연 앞으로 트럼프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처럼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며, 인종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전략을 추구할까요.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