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29일 일어난 부분일식./한국천문연구원
조선왕조실록에는 해가 달에 가려지는 일식(日食) 현상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왕이 소복 차림으로 정전에 나가 일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하늘에 용서를 구하고 재앙을 피하는 의례를 했다. 예를 갖추어야 하니 왕은 일식 예보가 늘 정확하기를 원했다. 세종 때에는 밤에 일어나는 일식, 즉 한반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나 관측되는 일식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가졌을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왕은 일식이 일어나면 깜짝 놀라 그제야 부랴부랴 채비를 갖추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식을 예측하는 담당자를 두어 역법에 따라 계산하게 하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식이 자연 현상의 일부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하늘의 경고이며 정성껏 예를 갖추어야 가려졌던 해가 다시 온전히 나타날 것이라는 관점을 동시에 유지했다.
이러한 관점은 조선 후기에도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과 지동설을 받아들였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대용은 1766년의 저작 ‘의산문답’에서 일식과 월식이 태양과 지구와 달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뿐 인간 세상의 정치 상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하면서도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수양하고 반성하는 것이 인간사의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찰스 F 블런트의 1842년작 ‘천상의 아름다움’에 묘사된 부분일식. /(The Beauty of the Heavens), 1842./스미소니언도서관 소장
오늘날 우리는 홍대용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연히도 달보다 400배 큰 태양이 지구인에게는 달보다 400배 멀리 떨어져 있어 달과 태양이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인다는 사실도, 그래서 해가 달을, 달이 해를 가리는 것이 그토록 멋진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연중 조금씩 변하는데, 달이 지구 가까이 있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경우는 개기일식이라 부르고, 달이 지구로부터 멀리 있어 일식 동안 태양이 불타는 고리처럼 테두리만 빛나는 경우를 금환일식이라 한다.
일식을 예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일식이 일어나는 날이면 소복을 입고 정좌하는 대신 태양 관측용 필름을 눈앞에 대고 태양을 바라보거나 과학 관련 기관에서 제공하는 생중계를 볼 수 있다.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에 우리나라에서는 태양의 일부가 달에 가려지는 부분 일식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 일부와 인도 북부, 중국 남부 등에서는 금환 일식으로 보인다. 예년 같으면 최고의 사진가들이 그곳으로 가서 멋진 사진 작품을 만들었을 테지만,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시기라 2020년 금환 일식 사진은 드물 것 같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동안 달에서는 지구가 어떻게 보일까. 달의 하늘에서는 지구가 떠오르지도, 저물지도 않는다.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달 앞면의 적도 한가운데에 서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고개를 한껏 젖혀 천정을 보아야 할 테고, 좀 더 높은 위도에서 본다면 좀 더 보기 편한 각도에 지구가 있을 것이다. 지구는 달보다 네 배가량 크다. 그러니까 달에서 보면 지구가 태양보다 네 배나 크게 보인다. 이 아름답고 커다란 파란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일식 동안 지구에 드리워진 달 그림자,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촬영/CNES
태양과의 각도에 따라 초승지구, 반지구, 보름지구 하는 식으로 지구의 모양도 바뀐다. 일식이 일어나는 날은 보름지구다. 칠흑 같은 달의 밤하늘에 파랗게 뜬 지구.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그 안에 구멍이 뚫린 듯 동그란 달그림자가 생긴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연중 조금씩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므로 일식 동안 지구에 드리워지는 달 그림자의 크기가 조금 클 때도 있고 작을 때도 있다. 그림자에 가려진 지역에 있는 지구인 중 일부는 그 시각 태양과 태양을 가린 달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개기일식 관측은 1919년 아프리카에서 있었다.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태양 근처에 있는 별의 사진을 찍었는데, 별이 실제 있어야 할 좌표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 찍혀 있었다. 멀리서 오는 별빛이 태양의 중력 때문에 휘어져 마치 별의 위치가 약간 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관측으로 증명해내는 순간이었다. 우리 민족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1919년의 일이다.
일식을 보겠다고 맨눈으로 혹은 돋보기나 쌍안경으로 태양을 직접 바라봐서는 안된다. 대신 조금 빳빳한 종이 한 장을 준비하면 일식을 관측할 수 있다. 볼펜심이나 송곳, 머리핀 같은 것으로 작은 구멍을 하나 혹은 여러 개 뽕뽕 뚫은 뒤 부분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해가 드는 곳에서 종이를 들고 있으면 아래의 바닥이나 벽면에 달이 살짝 가린 태양 형태대로의 빛이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