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주요 질병으로 떠오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은 모두 자기 공격적 특성을 나타낸다. 자아는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사회적 구도가 변화함에 따라 폭력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무자비한 고문의 폭력이나 테러리즘의 폭력, 언어폭력처럼 노골적이고 유혈이 낭자하는 ‘부정성’의 폭력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긍정성’의 폭력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재독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 이후 10년 만에 신간 ‘폭력의 위상학’으로 국내 독자들을찾아왔다. ‘피로사회’에서는 20세기 후반의 고도산업사회를 성과사회로, 사람들을 성과주체로 명명하며 이들이 겪는 병리적 현실을 파헤쳤다면 ‘폭력의 위상학’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주권사회에서 근대의 규율사회로, 다시 오늘날의 성과사회로의 옮겨오면서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 폭력의 위상학적 변화과정을 살피고 오늘의 폭력이 점점 내부화, 심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오늘날의 성과사회가 긍정성 과잉으로 인한 자기 착취의 사회라고 말한다. 성과사회에서 ‘나’라는 주체는 시스템의 요구를 내면화해 그에 전적으로 순응하면서 이상적인 자아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존재다. 여기에서 긍정성의 폭력이 싹을 틔운다. 스스로 과잉 생산, 과잉 커뮤니케이션, 과잉 주의, 과잉 활동의 대열에 합류하고, 결국엔 생존의 필요와 효율성의 추구로 내몰아 자기 자신을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로 만들고 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은 스스로를 불타버릴 때까지 착취하고 고갈시킨다.
저자는 이같은 긍정성의 폭력에는 사전 경고도, 뚜렷한 적도 없어 부정성의 폭력보다 훨씬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자기 공격성은 결국 시스템이 파열하여 전소되는 상태, 즉 자살에 이르기까지 치닫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착취로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라고 주문한다.
“타자의 테러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것은 같은 자의 테러, 내재성의 테러다. 부정성이 없는 이러한 테러에는 효과적인 방어 수단도 있을 수 없다.” 1만4,8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