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정주(定住)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도구와 기술을 이용한 생산력 증대였다. 사람의 노동력을 기계가 대신함으로써 줄어든 노동의 시간만큼 다른 분야의 발전에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인류는 지금 이전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그 중심에는 어느덧 일상용어처럼 자리 잡은 4차 산업혁명이 있다. 기계화·분업화·정보화 등 기존 산업혁명으로 ‘혁명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뒤따랐듯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투자’를 대변하는 자본시장도 진화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미국 월가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로 분석업무의 자동화를 꼽을 수 있다. 그 선두주자로 꼽히는 회사가 지난 2018년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이 5억5,000만달러에 인수해 화제를 모았던 켄쇼테크놀로지다. 이 회사는 AI 분석기술인 ‘켄쇼(Kensho)’를 통해 애널리스트 15명이 4주에 걸쳐 해야 할 분석을 단 5분 만에 처리하는 능력을 과시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가 정보 수집과 분석·판단 등에서 인간의 속도와 효율성을 훨씬 앞서는 대체재의 출현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만의 고유 속성이라고 믿었던 지적인 업무도 기계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금융업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투자전략 플랫폼, AI 기반 자산관리 서비스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핀테크로 대변되는 기술기반 회사의 금융업 진출도 이어진다. 전통산업 종사자의 생계유지와 플랫폼 비즈니스 같은 신산업 육성 중 어느 것을 택해야 옳은가라는 질문은 이미 과거형일 수도 있다.
이 변화의 흐름이 사람의 일자리를 줄이게 될지 혹은 오히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변화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변화의 소용돌이가 시작된 이상 잘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게 마련이다. 금융투자산업 또한 정보 접근에서 자금집행 방식까지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비대면 방식으로의 변화가 압도적이다. 거센 흐름에서 무엇을 포착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앞서 켄쇼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깨달음, 견성(見性)의 일본어 발음에서 가져온 명칭이다. 본질을 봐야(見)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터,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핀테크·빅데이터·AI 등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우리의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