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 본사의 활주로. 대한민국 경찰을 상징하는 푸른색 띠를 두른 ‘참수리(KUH-1P)’ 헬기에 다가서자 목이 절로 움츠러 들었다. “쿵쿵쿵쿵” 귀가 먹을 정도로 큰 프로펠러의 회전 소리에 위축된 것이다. 19m 길이인 헬기 조종석의 개암빛 창문이 맹금류의 눈처럼 번뜩였다. 불안한 마음에 집에 두고 온 딸 생각이 났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강풍을 헤집고 조종석 바로 뒤편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참수리는 조종사 2명과 승객 12명을 태울 수 있다. 방음과 헬기 내 소통을 위한 헤드폰을 머리에 얹고 나서야 비로소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리프트 오프(lift off)”. 이륙을 뜻하는 조종사의 말과 동시에 참수리가 두둥실 떠올랐다. 천천히 예열을 하듯 헬기가 공장 높이만큼 올라섰다. 항공기에 탄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호버링(정지비행)을 마친 참수리는 이내 남해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보시다시피 조종간을 잡지 않고 오토파일럿(자동비행조정장치)으로 비행하고 있습니다.” 헤드폰을 통해 들려온 조종사의 말에 놀라 조종석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아이패드를 3개 놓은 것 같은 첨단 시스템이 눈에 들어왔다. 내비게이션처럼 항로를 그려놓은 화면을 가리키며 조종사는 “화면에 그어져 있는 선을 따라서 헬기가 알아서 가는 것”이라며 “최첨단 전자 시스템을 탑재해 조종사의 조작 편의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임무수행 중 발생하는 피로도를 줄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참수리는 최고 속도가 시속 270㎞에 달하는 힘을 지녔지만, 안정적이었다. 바람이 제법 부는 날씨였지만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공기를 우격다짐으로 가르며 내는 프로펠러의 굉음과 상반되게 내부의 진동은 지하철보다 미미한 수준이었다. 에머럴드빛 망망대해를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줄이 없는 곤돌라를 타고 유람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수리는 KAI의 ‘수리온’을 기반으로 제작한 기동헬기다. 능동형 진동제어시스템을 탑재해 객실 내 진동 수준이 크게 개선됐다. 수송이 주 임무인 만큼 공격헬기와 달리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고려한 것이다. 수리온은 독수리의 ‘수리’ 100을 뜻하는 순 우리말 ‘온’에서 따온 말이다.

수리온은 주력인 육군 기동헬기뿐 아니라 의무후송 전용 헬기, 해병대 상륙 기동헬기 등 군용 파생형 헬기, 경찰 헬기, 소방 헬기, 산림 헬기, 해양경찰 헬기 등 관용헬기 개발을 통해 노후한 외국산 헬기를 대체하고 있다.

경찰청은 지금까지 총 8대의 참수리를 구매했다. 현재 운용 중인 참수리 5대는 경기남부, 충남, 경북지방경찰청 등에서 통합방위, 대테러, 인명구조, 교통관리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높은 임무가동률을 기반으로 참수리는 5,900여 시간의 누적 비행기록을 달성했다.

“섬을 기점으로 적의 대공포가 있다고 가정하고 비행해 보겠습니다.” 조종사가 조종간에 처음으로 손을 댔다. 일순간 헬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바이킹’ 같은 아찔한 느낌과 비슷한 중력의 짜릿함이 느껴졌다. 헬기가 섬 산등성이를 따라 낮게 비행했다. 헬기가 좌우로 격렬하게 기체를 뒤척였다. 아이맥스 영화처럼 섬의 나무들이 코앞에 다가왔다 멀어지길 반복했다.

삼천포를 찍고 헬기는 고도 1,590피트를 회복하더니 복귀를 시작했다. KAI 본사까지 10분을 남겨두고 헬기는 고도를 500피트로 다시 낮췄다. 활주로가 눈에 보이자 헬기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고개를 아래로 깔고 하강했다. 시작할 때처럼 낮은 고도에서 호버링을 한 헬기가 이윽고 바퀴를 지면에 댔다.


KAI는 이날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16개국 주한대사들에게도 참수리 탑승 기회를 제공했다. KAI는 수리온이 이들 국가에 방산 한류를 알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봉근 KAI 상무는 “수리온은 고객 국가의 기후나 사용처 등에 따라 맞춤형 제작이 가능하다”며 “앞서 수출 경험이 있는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와 콜롬비아, 페루 등을 대상으로 수출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천=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