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EPA연합뉴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오는 23일 출간할 예정인 ‘그것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의 일부 내용이 미리 공개되면서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미중 관계와 북한 핵 문제, 한미 관계,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인식, 참모의 뒷담화 등 쏟아진 굵직한 폭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받을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개된 회고록 주요 내용을 정리해봤다.
◇“트럼프, 시진핑에게 11월 선거 도와달라 부탁”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노골적인 재선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볼턴 전 보좌관은 당시 두 정상 간 막후 대화를 언급하면서 “그때 트럼프는 놀랍게도 이야기를 미국의 차기 대선으로 돌렸다”며 “시 주석에게 자신이 (대선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농민, 중국의 대두와 밀 수입 증대가 선거 결과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시 주석이 농산물 문제를 우선 순위에 두고 협상을 재개하는 데 동의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300년간 가장 위대한 중국 지도자!”라고 기뻐했다가 몇분 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며 수위를 더 높였다고 한다. 당시 대화를 가리켜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의 마음 속에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미국의 국익이 섞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난 백악관 재임 시절 트럼프의 중요 결정 가운데 재선을 위한 계산에서 나오지 않은 게 하나라도 있는지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주장 사실 아니다”고 반박했다. /AP연합뉴스
◇트럼프-文 통화에 “고통스러워 심장마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한·미 정상인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나눈 대화에 답답함을 토로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대통령의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폼페이오가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했다’며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고 털어놨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외교가 성공할 가능성이 제로”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정치매체 더힐은 “폼페이오가 오랜 시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여겨져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주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며 “국무부는 논평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단독회담을 원한 이유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단독회담을 한 것은 북한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볼턴은 확인했다.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김 위원장 외에도 러시아와 중국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만날 것을 요청했다면서 “트럼프의 비위를 맞춰 원하는 것을 얻어내도록 조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적대국가의 지도자들은 트럼프가 재선 승리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트럼프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1·2차 정상회담에서 각각 단독으로 회담했다.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연합뉴스
◇북한은 트럼프 재선을 위한 홍보도구?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노력보다는 대외적으로 비치는 홍보 효과만 의식했다는 게 볼턴 전 보좌관의 설명이다.
그는 또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첫 번째 싱가포르 회담 이후 엘튼 존의 사인이 담긴 ‘로켓맨’ CD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하도록 수차례 요구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며 조롱했지만, CD를 선물함으로써 애정이 어린 표현이었다는 점을 각인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CD를 전달하려 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그 해 평양 방문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고, 한동안 CD 전달이 우선 과제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푸틴, 트럼프 가지고 놀고, 놀고, 또 놀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정상들에게 “허수아비 취급을 받았다” “바이올린처럼 연주 당했다”는 발언도 쏟아냈다.
미국 ABC뉴스가 볼턴 전 보좌관을 독점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볼턴은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딜메이커(협상의 달인)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허수아비 취급을 받았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과의 만남에서도 “조종당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볼턴은 외국 정상들이 트럼프를 이용하기 쉬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가오는 11월 재선에 몹시 집착했고 이런 약점 때문에 손쉽게 공략당할 수 있다는 이유다.
특히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 “(푸틴은) 심각한 적수를 마주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트럼프)를 가지고 놀고, 가지고 놀고, 또한 가지고 놀았다”면서 그 광경을 “마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핀란드가 러시아 속국인가?” 볼턴에 비친 트럼프 외교인식
트럼프 대통령은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핀란드가 러시아의 일부냐고 물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이 적었다. 세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간과 18년간 전쟁 중이지만 전·현직 대통령을 수차례 혼동했다고 전해졌다. 그는 또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회담에서 불쑥 영국이 핵보유국이냐고 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밖에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깜짝 놀랄정도로 무지했고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들에게 종종 휘둘렸으며 자신의 참모들로부터 경멸을 당하기도 했다”고 서술했다.
◇ 딸 보호하려 사우디 왕실의 잔혹극 묵인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고도 주장했다. 이는 장녀 이방카가 정부 업무에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사실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게 볼턴 전 보좌관의 전언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레이스에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사적 메일을 공무에 사용했다며 맹공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