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트럼프 만났었다는데…'맨해튼 롯데월드' 왜 불발됐나

■[신간-신격호의 도전과 꿈]
오쿠노 쇼 지음, 오현정 옮김, 나남 펴냄
故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50년 도전사
평생 인연 日 건축가가 사업 뒷얘기 전해
신격호-트럼프, 토지 거래는 불발됐지만
아들 신동빈, 美 투자로 트럼프와 인연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경./사진제공=롯데호텔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생전 맨해튼에 롯데월드를 세우기 위해 현 미국 대통령이자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 직접 만나 빅딜을 시도했었다는 이야기가 책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노딜’로 끝나면서 ‘맨해튼 롯데월드 프로젝트’는 불발됐지만 당시 협상 경험이 신 명예회장으로 하여금 해외 지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명예회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불발 에피소드는 최근 출간 된 책 ‘신격호의 도전과 꿈’에 등장한다. 신 명예회장의 신뢰를 받으며 롯데그룹의 굵직한 프로젝트에 줄곧 참여해온 일본 건축가 오쿠노 쇼가 저자다.

책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잠실 롯데월드 서쪽 지구가 1989년 개장되자 곧바로 해외로 눈을 돌렸다.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한 복합 개발 사업을 전 세계로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신 명예회장은 서울에 이어 뉴욕과 도쿄에 롯데월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그리하여 그가 가장 먼저 부지 매입에 나선 곳은 뉴욕 맨해튼이었다. 신 명예회장으로부터 부지 물색 지시를 받은 현지 주재원이 뉴욕 주요 지역을 샅샅이 물색했다.


헬리콥터 타고 "저기가 좋겠다" 했지만...
주재원의 눈을 사로 잡은 건 허드슨강 유역에 인접한 부지였다. 면적은 3만㎡ 정도로, 롯데월드를 짓기엔 충분하지 않았지만 입지 여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보고를 받은 신 명예회장은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헬리콥터를 타고 상공에서 시찰했다. 신 명예회장 역시 빼어난 입지 여건을 마음에 들어 했고, 토지 매입에 착수했다.

토지 소유주는 다름 아닌 뉴욕의 부동산 재벌 트럼프였다. 이에 트럼프를 직접 만나 토지 매입을 제안했지만 협상은 쉽지 않았다. 이후에도 신 명예회장은 몇 차례 트럼프와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협상에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고, 결국 맨해튼 토지 매입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사진제공=롯데호텔

맨해튼 롯데월드 프로젝트는 좌절됐지만 뉴욕 한복판에 롯데 간판을 달겠다는 신 명예회장의 꿈은 작고하기 전 끝내 이뤄졌다. 롯데그룹은 2015년 맨해튼 미드타운 매디슨 애비뉴에 위치한 5성급 호텔 ‘더 뉴욕 팰리스 호텔’을 8억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1882년 설립됐으며 지상 55층 규모로 총 909개 객실과 23개 연회장을 갖추고 있다.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또 유엔 총회가 열리는 매년 9월에는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이곳에 머문다. 롯데는 인수 작업 완료 후 호텔 이름을 ‘롯데 뉴욕 팰리스호텔’로 바꿨다.

지난 해 5월 백악관에서 대화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또 아버지 신 명예회장은 과거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아들 신동빈 회장은 트럼프와 인연을 꽤 잘 맺었다. 신 회장은 지난 해 5월 한국 그룹 총수로는 처음로 백악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호텔에 대해 “좋은 투자이며 전통이 있는 훌륭한 건물이니 잘 보존해 달라”고 신동빈 회장에게 당부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열린 롯데케미칼 루이지애나 화학공장 준공식을 축하하는 서한을 신 회장 앞으로 직접 보내기도 했다.

한편 책에는 소공동 롯데타운, 잠실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의 탄생 뒷얘기도 담겨 있다. 기업 관계자가 아닌 건축가의 입장에서 서술한 각 프로젝트의 흥망성쇠가 흥미롭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초반에는 무궁화의 꽃 모양과 에펠탑의 곡선미를 적용하려 했으나 최종적으로 청자와 붓 모양의 디자인이 채택된 이유를 저자가 들려준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책 맺음말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의 꿈은 언제나 현장에서 결정되고 완성됐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신 명예회장의 표현으로 ‘거기 가봤나?’를 꼽았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