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상호비방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낚였다(hooked)’는 표현을 쓰며 현직 대통령의 무능을 드러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볼턴 전 보좌관을 ‘미치광이(wacko)’라고 맞받아치며 감정싸움을 벌였다.

18일(현지시간) CNN은 볼턴 전 보좌관이 지난 2018년 6월의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로를 치켜세웠으며 이를 통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낚았다’고 표현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볼턴 전 보좌관이 오는 23일 출간할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의 발췌본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미정상회담을 여는 데 필사적이었다면서 “나는 김정은을 만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열의에 가슴이 아팠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원하던 것을 가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바라던 것을 갖게 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 이익과 국가이익을 구분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특히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동을 사진찍기용이라고 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만남이 미국의 협상 위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는 관심이 거의 없다”고 했다. 사실상 개인 홍보행사 정도로 여겼다는 얘기다. 그는 또 북미 간의 외교 전체를 스페인 춤 ‘판당고’에 비유한 뒤 이는 “한국의 창조물”이라며 “김정은이나 우리 쪽에 관한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에 더 많이 관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을 “거짓말과 꾸며낸 얘기의 종합”이라고 비하했다. 또 볼턴 전 보좌관이 “미쳤다”고 하면서 그의 말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전략을 폈다. 그는 볼턴 전 보좌관을 “전쟁이나 하고 싶어하는, 불만에 가득 찬 지루한 바보”라며 ‘전쟁광’으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장기간 교착상태를 면치 못하는 북미관계의 책임을 볼턴 전 보좌관에게 돌리려는 발언도 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미친 존 볼턴이 CBS의 ‘디페이스 더 네이션(Deface the Nation)’에 나가 북한을 위해 리비아 모델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을 때 다 망했다. 나와 잘 지내고 있던 김정은은 그의 미사일처럼 분통을 터뜨렸고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이 2018년 4월 말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을 골자로 한 리비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때문에 북미관계가 진전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 북한은 리비아 모델에 대해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였으며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는 볼턴을 공개 저격하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재선을 도와달라고 간청했다는 볼턴의 폭로를 의식한 듯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발언도 잇따라 내놨다. 그는 이날 트윗을 통해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을 다양한 조건하에서 정책적 선택지로 확실히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고위급 회담을 가지고 양국 정상의 무역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 등 관계 개선에 적극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을 하루 만에 뒤집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는 “중국이 경쟁국들의 경제를 망가뜨리기 위해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