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
예로부터 뛰어난 미인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많다. 세상에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는 절세미인(絶世美人)·천하절색(天下絶色) 등이 그것이다. 주유왕과 포사, 오나라 부차와 서시, 당 현종과 양귀비처럼 왕이 미인에게 빠져 나라가 망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경국지색(傾國之色)도 있다. 특히 양귀비를 추모한 두보의 시 ‘애강두(哀江頭)’에서는 맑은 눈동자와 하얀 치아를 의미하는 명모호치(明眸皓齒)라는 말로 양귀비의 모습을 그렸다. 꽃 같은 얼굴과 달 같은 자태를 뜻하는 화용월태(花容月態),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라는 의미의 단순호치(丹脣皓齒)도 한 예다.
이중 단순호치는 삼국지에서 유래된 내용이다. 조조가 지난 204년 하북 지방의 패자 원소를 제압했을 때 아들 조비가 원소의 둘째 아들 원희를 죽이고 그의 아내 견씨를 빼앗아 정실로 삼는다. 대단한 미인이었나 보다. 조조가 견씨부인을 보고 ‘이 전쟁이 조비를 위한 전쟁이었구나’라고 탄식할 정도였고 조비의 동생 조식도 형수가 된 견씨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었다. 나중에 조조의 뒤를 이어 위나라 왕이 된 조비는 후한 헌제의 두 딸을 새 측실로 들인 후 시기 질투가 많다는 이유로 조강지처 문소황후 견씨를 사사한다. 이때 조식이 형수인 견씨부인의 미모를 찬미하는 ‘낙신부(落神賦)’라는 시를 지었다. ‘그대의 붉은 입술은 밖으로 낭랑하고 하얀 치아는 안으로 선명하다.’ 후에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를 뜻하는 단순호치는 미인의 대명사가 됐다.
입술은 이목구비 중 유일하게 붉은색을 띠어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기 때문에 미인의 요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얇은 입술은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노화에 의해 입술 윤곽도 흐려지고 얇아지기 때문에 붉고 볼륨감 있는 입술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입술에 볼륨감을 주는 입술 필러 시술은 필러가 처음 도입된 이래 서양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술 중 하나다. 우리 기준에서 볼 때 입술이 두껍고 큰데도 불구하고 서양 여성들은 앤젤리나 졸리의 입술처럼 전체적으로 볼륨 있는 입술을 선호해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입술 볼륨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그렇게 큰 인기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여성층에서 입술 필러 시술이 급격히 늘고 있다. 에스테틱 트렌드가 유행을 타면서 우리나라 여성들도 입술 볼륨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입술 필러 시술이 전체적인 볼륨보다는 부분 볼륨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러운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트렌드를 바탕으로 2019년 글로벌 패션잡지 얼루어 미국판 6월호에 K뷰티를 대표하는 시술로 한국의 ‘체리 립(cherry lip) 필러 시술’이 소개된 적도 있다. 검색엔진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체리 립’을 쳐보면 유명 K팝 스타의 얼굴들이 나오고 ‘체리 립 화장법’은 유튜버들의 인기 구독 영상이 됐다. ‘체리 립’이라는 명칭은 필러 시술 후 변화된 입술 모양에서 유래됐다. ‘체리 립’ 입술필러 시술은 입술을 전체적으로 크게 볼륨업 하는 방법이 아니라 윗입술의 양 끝과 아랫입술 가운데 양쪽에 동그랗게 부분적으로 볼륨을 강조함으로써 마치 체리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앵두 같은 입술’의 글로벌 버전인 셈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마스크 착용이 자신의 보호는 물론 타인에 대한 에티켓이 되면서 마스크로 가려지는 입술 대신 노출되는 눈에 집중하는 새로운 에스테틱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립스틱이 마스크에 묻기에 입술 화장은 거의 하지 않고 대신 눈썹 화장과 아이라인, 눈 주변 색조화장이 진해지고 있다. 속눈썹 마스카라가 잘 팔리고 눈썹 문신도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병원도 눈썹 문신을 새로 한 여직원들이 많다. 눈을 크게 보이려고 ‘눈 밑 쌍꺼풀’이라 불리는 눈 밑 애교살 필러 시술을 하는 이도 부쩍 늘었다. 코로나 시대에는 미인의 대명사로 입술이 눈에 자리를 내어줘야 할 것 같다. 단순호치에서 명모호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