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 '22번의 펀치'에도…서울 집값 '맷집'만 커졌다

감정원 “대책 내놓을수록 하락 기간 점점 줄어들어”
KB “서울 집값 안 떨어져”…‘6·17’도 단기충격 그칠 듯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 값은 주간 단위로 단 한 번도 하락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짧은 보합 이후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지난 2018년 ‘역대급’인 ‘9·13대책’ 때만 해도 발표 이후 20주 이상 가격이 하락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규제가 시장의 내성을 더 키운 것으로 분석했다. 수요억제만으로는 근본적인 집값 안정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19일 서울경제가 민간통계인 KB국민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2년간 가장 강력한 대책으로 꼽히는 9·13대책과 12·16대책 발표 이후 서울 아파트 값 하락 기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주간 단위로 9·13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값은 무려 22주간 추락했다. 당시 추풍낙엽처럼 가격이 떨어지면서 ‘강남불패’가 끝났다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5개월간의 하락 이후 서울 집값은 원상회복되며 종전 최고가를 넘어섰다. 급기야 정부는 2019년 또 한 번의 초강력대책인 12·16대책을 내놓았다. KB 자료를 보면 이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값은 3주간 보합세(0.00%)를 기록했을 뿐 단 한 번도 하락하지 않았다. 특히 이 기간은 코로나 쇼크까지 겹쳤다.


이 같은 흐름은 정부 공식통계인 한국감정원 자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하락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단축된 것이다. 감정원 자료를 보면 9·13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값은 32주 연속 하락했다. 하지만 12·16대책 때는 9주간의 하락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이번에 ‘6·17대책’을 내놓은 것도 12·16대책의 충격파를 시장에서 빨리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 발표에도 집값이 오르는 경험을 하며 학습효과가 생겼기 때문으로 분석하다. 규제가 내성을 더 키우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시장이 규제에 내성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유동성 등 시장 상황을 봤을 때 이번 6·17대책이 근본적으로 집값을 떨어뜨리기는 힘들 것”이라며 “낮은 정책수위가 아니어서 매수세 추가 유입 하락 및 오름폭 감소 등은 나타나겠지만 결국 부족한 공급 등 근본적인 해결방안 없이는 효과를 보기 힘들 듯하다”고 말했다.

채찍 들수록…되레 과열되는 부동산시장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난 17일. 투기과열지구로 격상(?)된 인천 연수·남동·서구 등에서는 “정부가 인정해준 인천의 강남 3구”라며 자축까지 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기 전에 세금을 절약하려 서둘러 내놓은 급매물이 여러 건 거래됐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 다주택자의 경우 양도소득세가 중과되기 때문이다. 이틀 뒤인 19일. 서울 잠실 일대 중개업소는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오는 23일부터 이 일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다. 그 전에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여럿 모이면서 아파트 거래가 많이 이뤄졌다는 것이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가격도 전 고가와 비슷한 수준에서 다수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6·17대책’을 포함해 현 정부 출범 이후 집값을 잡기 위해 내놓은 대책만도 무려 22회에 이른다. 서울경제가 파악한 결과 약 52일에 한 번꼴로 대책이 나온 셈이다. 시장은 이미 내성이 생길 대로 생겼다. 이번 대책 역시 발표되자마자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사놓으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으로 16~17일 전국 주요 지역의 중개업소는 불야성 영업을 했다. 풍선효과 또한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규제가 부작용을 낳고, 그 부작용이 또 다른 규제를 부르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일부 시장은 패닉, 보유자는 지켜보자
이번 대책으로 ‘2년 거주 요건’과 ‘토지거래허가’까지 겹친 서울 강남 일대 재건축단지는 패닉 상태다. 이곳 외에 급작스레 규제의 직격탄을 맞게 된 예비청약자나 내 집 마련 수요자들도 청와대에 청원을 넣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미 예상됐던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김포와 파주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이번 6·17대책에서 규제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김포에서는 17~18일 신고가 단지가 잇따라 나오고 호가가 수천만원 급등했다. 천안 일대도 마찬가지다. 오산·평택 등 경기 남부까지 규제지역으로 묶이면서 그보다 더 외곽인 천안에까지 풍선효과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규제지역 추가 지정에 따른 여파가 그리 크지 않은 모습이다. 인천 서구 원당동 및 충북 청주 외곽 등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거나 조금 오른 지역들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풍선효과로 집값이 급등한 송도국제도시를 비롯해 안산·오산 등은 이미 예견했다는 입장이다.

안개에 덮여 희뿌연 서울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대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대응도 신속해졌다. 초창기 규제에는 매도 여부 등을 묻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은 임대사업자 등록부터 재빠른 ‘손절’까지 다양한 대응에 나섰다. 규제가 발표된 17일 인천 송도에서는 법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가격을 기존 고가 대비 최대 5,000만여원 내린 급매물들이 나왔고, 이들 매물의 상당수가 소화됐다는 후문이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사려는 사람의 경우 어차피 갖고 있으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며 “대책을 하도 많이 겪은 집주인들도 예전처럼 바로 초급매를 내놓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내성 커진 시장에…23번째 규제 기정사실화
시장에서는 이번 대책의 여파로 강남 재건축 등 특정 시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잠시 주춤한 뒤 다시 회복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히려 풍선효과로 그간 소외됐던 지역이 집값 키 맞추기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풍선효과 등이 바로 나오자 국토교통부는 19일 “이번 규제지역 지정 이후 비규제지역에서 주택시장 과열 우려가 발생하는 경우 규제지역 지정에 즉시 착수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부했다. 22번째 대책이 나온 뒤 이틀 만에 정부 스스로 곧 23번째 대책을 내놓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이번 대책으로 당분간은 거래절벽 상태가 심화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일정 기간은 아파트 가격이 소폭 하락하는 등 안정세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 워낙 내성이 커져 과거보다 대책 약발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awlkw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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