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AF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평화헌법에 기초한 ‘전수방위’ 원칙을 흔들 수 있는 큰 쟁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일본 신문이 20일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아베 총리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적 기지 공격 능력에 대해 “예를 들면 북한이 일본에 대한 공격을 시사하고 탄도미사일 발사에 착수한 경우, 일본이 미리 공격해 발사를 막는 능력”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마이니치 설명대로라면 적 기지 공격 능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선제 타격을 금지하고 있는 일본의 전수방위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은 “전수방위는 상대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 양태도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에 그치며, 보유하는 방위력도 필요·최소한으로 한정하는 등 헌법 정신에 따른 수동적 방위전략의 자세”라고 규정하고 있다.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는 원거리 타격 수단의 획득을 의미하는데 이와 관련해 일본 자위대의 중거리 미사일 보유도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니치는 “주일미군 주둔경비 부담에 관한 교섭이 머지않아 본격화할 전망”이라며 “‘자위대의 역할 확대’가 논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폐지됨에 따라 미국은 동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검토”한다며 “일본에 (미군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위대의 지상 발사형 중거리 미사일 보유도 물밑에서 협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의 ‘적 기지 공격 능력’ 발언은 미국과의 교섭을 앞두고 선택의 폭을 넓히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마이니치는 분석했다. 지난해 미국과 러시아가 잇따라 탈퇴한 INF 조약에 따른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는 5,500㎞다. 현재 육상자위대가 보유한 미사일의 사거리는 백 수십㎞ 불과해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 기지를 타격할 수 없지만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게 되면 가능해진다.
일본 육상자위대가 시즈오카현에서 탱크를 몰고 있다./EPA연합뉴스
한편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적 기지 공격 능력의 보유는 ‘미일동맹 역할분담의 변용’이라고 이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적 기지 공격 능력의 보유는 헌법이 금지하고 있지 않지만, 정책 결정에 따라 보유하지 않고 미군에 맡긴다는 입장이었다.
아베 총리도 지난 1월 참의원 본회의에서 적 기지 공격 능력에 대해 “미일의 역할 분담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앞으로도 미일의 기본적인 역할 분담을 변경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가 이번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검토한다고 말을 바꾼 것은 기존 미일의 역할 분담을 변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미사일 방위 전략 변화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미사일 요격 체계 위주인 기존 탄도미사일방어(BMD) 구상 대신 ‘통합 대공·미사일 방어’(Integrated Air and Missile Defense·IAMD) 구상을 내세우고 있는데, 여기에는 적 기지 공격이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 아사히는 “정부가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하는 논의를 시작하면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아베 총리가 돌연 논쟁적인 이슈를 던진 것은 잦은 정권의 ‘실수’에 대한 비판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