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연이 한국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맞추고 있다. /연합뉴스
“주말에 욕심을 자제하는 것이 우승을 위한 가장 큰 숙제가 될 것 같네요.” 지난 19일 2라운드를 마치고 선두에 나선 뒤 욕심을 경계했던 유소연(30·메디힐)이 뒷문을 잘 지킨 끝에 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 여자오픈(총상금 10억원) 우승의 꿈을 이뤘다.
유소연은 2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 1개와 보기 1개로 이븐파 72타를 쳤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한 그는 끈질기게 추격한 2위 김효주(25·롯데)를 1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12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주 무대를 옮긴 유소연은 2015년 8월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이후 약 5년 만에 한국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통산 우승은 10승으로 늘었다.
‘내셔널 타이틀 사냥꾼’의 위용도 재입증했다. 2009년 중국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2011년 US 여자오픈, 2014년 캐나다 여자오픈, 2018년 일본 여자오픈 등 주요국 최고 권위의 대회를 차례로 제패한 유소연은 한국 여자오픈 우승이라는 오랜 숙제를 해결하며 5번째 내셔널 타이틀 대회 우승컵을 수집했다.
최종라운드 우승 경쟁을 마친 뒤 인사 나누는 유소연(왼쪽)과 김효주. /연합뉴스
한때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던 유소연의 원숙함이 돋보인 승부였다. 오지현(24·KB금융그룹)에 1타 앞선 선두로 출발한 유소연은 5번홀까지 파 행진으로 안정적인 경기를 펼쳤다. 오지현이 전반에만 3타를 잃으면서 유소연과 김효주의 우승 대결로 좁혀졌다. 3타 차 3위로 시작한 김효주는 5번(파4)과 6번홀(파5) 연속 버디를 잡았다. 유소연은 6번홀 버디로 응수했지만 9번홀(파4)에서 짧은 파 퍼트를 놓쳐 1타 차로 쫓겼다.
후반엔 길고 까다로운 난코스에서 팽팽한 파 세이브 대결이 이어졌다. 유소연은 지난 2월 LPGA 투어 호주 여자오픈 이후 4개월 만의 실전에서도 빈틈이 없었다. 14번홀(파5)에서는 드라이버 샷을 왼쪽 러프 나무 아래로 보내 세 번째 샷에서도 긴 거리를 남겼지만 가볍게 파를 기록했다. 15번홀(파4)에서는 두 번째 샷이 그린 주변 깊은 러프에 떨어졌지만 높게 떠올랐다 부드럽게 내려앉는 기술 샷으로 홀 가까이 붙여 위기를 넘겼다. 1타 차의 살얼음판 리드가 이어진 마지막 18번홀(파4)에서는 강심장의 면모를 과시했다. 유소연과 김효주의 두 번째 샷이 모두 벙커에 빠진 가운데 김효주가 세 번째 샷을 1m 남짓한 거리에 올려 자칫 연장 승부에 끌려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유소연은 난도 높은 벙커 샷을 홀 50cm에 붙여 우승을 확정했다.
2주 전 롯데칸타타 여자오픈에 이어 2승째를 노린 김효주는 이날 2타를 줄였지만 후반 내내 1타 차를 좁히지 못해 2014년 이후 6년 만의 한국 여자오픈 우승 문턱에서 멈췄다. 지난해 KLPGA 투어 전관왕 최혜진(20·롯데)은 9언더파 3위에 올라 시즌 첫 승을 다음으로 미뤘고 2018년 한국 여자오픈 우승자 오지현은 김세영과 나란히 8언더파 공동 4위에 올랐다. 첫날 선두였던 세계 1위 고진영(25)은 이날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 단독 6위(6언더파)로 마무리했다.
유소연은 경기 후 “우리 내셔널 타이틀이 없어서 아쉬웠고 2008년 한국 여자오픈 준우승이 국내 경력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기쁨이 더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KLPGA 투어 루키였던 2008년 대회에서 신지애와 빗속 3차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내줬다. 그는 “4개월 만의 출전이라 기대를 덜 했던 게 1, 2라운드 선전의 원동력이었고 오늘 후반에도 우승 욕심을 내려놓자는 마음으로 임해 평소 플레이 스타일대로 경기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우승상금 2억5,000만원 전액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퇴치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유소연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많은 분이 노력해 만들어주신 KLPGA 투어 대회이기 때문에 보너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