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백 한국재정학회장
정부세종청사 4동 기획재정부 세제실. 매년 이맘때 이뤄지는 세법개정 작업이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충격으로 세금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세제 지원 요구는 빗발치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돈을 더 쓰자고 증세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재부 세제실장, 관세청장을 지낸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 박기백 한국재정학회장, 전규안 한국세무학회장,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등 조세전문가 4명에게 올해 세법 개정 추진 방향과 중장기적인 조세체계 개편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들어봤다. /편집자주
●참석자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
박기백 한국재정학회장
전규안 한국세무학회장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코로나19 경제위기 상황입니다. 정부가 조세 측면에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전규안 회장=소비 확대를 위해 신용카드소득공제율 인상(소득세), 접대비 한도율 일시 확대(법인세),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 등을 취할 수 있습니다.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을 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납세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의 지원 방안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까다로운 적용요건을 완화하고 형평성에 논란이 있을 정도로 대폭 확대해야 제도 도입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박훈 교수=경제 위기 시 세금이 어려움을 더 가하지 않도록 납부·징수유예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세금 감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살펴봐야 합니다. 경제 위기에서 전 영역에 영향을 받는 상황이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세금 감면 효과가 확실한 부분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마스크 구입에 대해 생활 세제지원 차원에서 별도로 소득세 소득공제 또는 세액공제를 한시적으로 추가 허용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25%에 달합니다. 법인세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낙회 고문=법인세는 효율성에 주안점을 둬야 하는 세목입니다. 세수확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효율 측면에서는 세율의 단일화(단일화가 어렵다면 중소기업에 대한 낮은 세율과 일반세율의 이원화)가 필요합니다. 현재 국내 투자 부진은 대기업을 재벌기업과 동일시하는 기성 정치권의 시각 때문입니다. 이를 바꾸지 않는 한 개선되기 어렵습니다.
△박 교수=최고세율 때문에 국가 간 비교에서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것은 개선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법인세 최고세율이 높기 때문에 국내 투자가 부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높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정부의 반기업적 정서로 비쳐 국내 투자를 꺼리는 것이라면 그 말이 맞을 수 있지만, 세제 이외에 국내 투자에 매력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최대주주 할증까지 하면 60%에 이릅니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전 회장=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입니다.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는 국내 산업 경쟁력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 높은 상속세율은 가업상속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고용유지 또는 고용창출이 전제되는 경우 가업상속공제의 요건과 범위를 확대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가업상속에 대해 자본이득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즉 고용유지 또는 고용창출이 전제되는 경우 상속 시점에서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인이 상속자산을 처분하는 시점으로 과세 시점을 이연하는 것입니다.
△박기백 회장=최대주주 할증은 없애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업 운영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장기간에 걸쳐 납부할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김 고문=상속세는 부의 불평등이 심한 현 상황에서 세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기업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가업상속세제를 보다 과감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업이 정상궤도에 오르는 것이 어려운 만큼 일단 정상궤도에 오른 기업은 어떤 형태로든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규안 한국세무학회장
-‘누더기 세법’ 지적이 나옵니다. 부동산 세제가 누더기 취급받는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박 교수=부동산 경기 등락에 따라 세제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세제로 부동산시장을 잡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부동산에 따른 부의 축적은 다른 자산보다 세금부담을 좀 더 지우겠다는 기본원칙만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주, 보유, 세대 자격 등 여러 요건이 그 당시 경제상황에 맞게 개정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복잡한 세제를 하나 더 추가한 격이 돼버립니다.
△박 회장=세금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이나 논리보다는 상황이 발생하면 긴급처방식의 세금 정책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종합부동산세의 경우에 투기 억제 목적인지, 고액 부동산자산가에 대한 세금인지가 불분명합니다. 투기 억제 목적이라면 장기 거주자에 대한 세금 감면이 많아야 하지만 고액부동산 자산가에 대한 세금이라면 거주 기간, 연령과 무관하게 과세해야 합니다.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세입 확충 방안은 어떻게 접근해야 합니까.
△김 고문=오는 2022년 이후 세입 확충은 필연적입니다. 세수확보는 가장 먼저 소득과세, 그 다음 소비과세, 재산과세 순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득세는 재원확보와 소득재분배의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특히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양도차익에 대한 소득세는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의 균형도 필요하겠습니다. 소비과세는 재원확보와 외부불경제 측면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고 재산과세는 특정 재산보다는 모든 재산을 대상으로 조세 중립적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박 회장=복지 재정 재원조달을 위한 증세는 국민적 합의와 여론을 고려해야 합니다. 증세를 하는 경우에도 주식양도차익이나 암호화폐, 임대소득 사각지대처럼 제대로 과세가 되지 않는 분야나 세금감면 축소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합니다. 비과세 감면 중에서 교육비나 의료비 공제같이 형평성에 어긋나는 항목들은 줄여나가야 합니다.
△전 교수=이론적으로 세입확충은 과세 대상을 늘리거나 세율을 높이거나, 아니면 감면을 축소하고 세목을 새로 만드는 방식 등이 있습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세입확충은 추가적인 세원 개발을 개발하고 현재 탈루되고 있는 세원을 발견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감면도 축소해야겠죠.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은 쉬운 방법이지만 조세저항이 커서 실제로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리=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