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어가 필요 없는, ‘역시 렌트’였다. 무대 위 파격과 도발은 여전했고, 젊은이들의 꿈과 방황·사랑이 빚어내는 메시지의 울림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지난 16일 정식 개막한 뮤지컬 ‘렌트’의 한국 초연 20주년 공연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렌트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과 꿈을 그린 작품이다. 1996년 오프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사회적으로 금기시됐던 동성애, 에이즈, 마약 등 파격적 소재를 녹여내 화제를 모았다. 탄탄한 스토리에 록·리듬앤드블루스·탱고·발라드·고스펠 등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음악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팬덤까지 생겨났고, 2000년 한국 초연 역시 사전 예매율 70%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무대 위에 멀쩡한 인물은 없다. 에이즈에 걸린 작곡가와 여장 남자, 약물중독자 댄서, 무정부주의자 교수, 동성애자 행위예술가 등 하나같이 사회의 음지에 속한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살아내는 오늘은 누구의 그것보다도 솔직하고 치열하다. “다른 길, 내일은 없어. 오늘만 있을 뿐.” 자본주의의 상징 뉴욕에서 가난과 질병,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불안정이 일상’이 된 주인공들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내일은 의미 없다. 그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대표 넘버 ‘시즌즈 오브 러브(Seasons of Love)’에서 반복되는, ‘1년’ 아닌 ‘52만 5,600분’이라는 가사는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제각각의 사연을 지닌 젊은이들이 사랑과 우정으로 엮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누군가의 죽음과 오해, 갈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뒤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모인다는 줄거리다. 공연은 한 장면에 2~3개 상황을 동시에 풀어내는 방식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다소 산만하게도 느껴지지만, 개인별·커플별 갈등의 발생과 해소가 중첩되면서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한층 선명해진다. 여기에 오종혁·아이비·최재림·김호영·전나영 등 주요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여전히 파격적인’ 작품을 완성했다. 2003년·2009년 렌트로 데뷔한 김호영·최재림, 오디션을 거쳐 새로 합류한 배우들이 안정감과 신선함을 균형 있게 가져간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감동은 뭐니 뭐니 해도 다시금 확인하는 원작자 조나단 라슨(1960~1996)의 천재성이다. 파격 소재에 적나라한 가사와 안무는 물론이요, 20여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번뜩이는 설정과 은유가 작품에 넘쳐난다. 크리스마스 저녁, 동성애자와 에이즈 환자, 약물중독자, 무정부주의자가 긴 식탁에 나란히 앉아 축제를 즐기는 모습에선 예수와 열두 제자의 ‘최후의 만찬’이 떠오른다.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의 이름이 ‘엔젤’인 것은 90년대 에이즈 환자와 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한방’이다. 세월을 뛰어넘는 원작의 힘, 이것이 ‘역시 렌트’를 가능케 한 비결 아닐까.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