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조정래 감독, 명창 이봉근, 배우 이유리, 김동완, 박철민. / 사진=양문숙 기자
2020년 여름,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 영화가 찾아온다. 28년 간 한국 정통 음악의 영화화에 대한 조정래 감독의 열망이 담긴 ‘소리꾼’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영화 ‘소리꾼’ 언론 시사회가 진행됐다. 조정래 감독과 명창 이봉근, 배우 이유리, 김동완, 박철민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리꾼’은 영조 10년 착취와 수탈, 인신매매로 정국이 어수선한 시기 납치된 아내 간난을 찾기 위해 저잣거리에서 노래하는 소리꾼 학규를 중심으로 뭉친 광대패의 조선팔도 유랑기를 그린 뮤지컬 영화다.
영화 ‘귀향’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조정래 감독은 4년 만에 신작 ‘소리꾼’을 내놨다. 그는 “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는데 굉장히 많이 방황하던 차에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서편제’를 접했다.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영화도, 소리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대학교 3학년(1998년) 때 학규와 갓난이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시나리오 ‘회심곡’을 썼고, 이를 기본으로 이 영화를 할 수 있게 돼서 영광스럽다. 이번에 큰 결심 내서 함께 해주신 배우님들과 스태프들에게 이 자리를 비롯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정래 감독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사진=양문숙 기자
조 감독은 “저는 주위로부터 ‘소리에 미친놈’이라고 들을 정도로 우리 소리와 판소리를 사랑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우리 소리의 매력이나 우리 전통 음악에 대한 그런 것들을 극대화 시키자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고 학규와 갓난이, 청이를 포함해 길 위에 만난 사람들과 가족이·공동체가 되어가는 극 서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영화를 보신 관객분들이 ‘6개월 동안 아버지께 연락 못했는데 전화 한 통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리꾼’의 주연 배우 캐스팅에 관련된 비화를 밝히면서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주인공은 반드시 소리꾼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디션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이봉근씨를 만났다. 봉근씨가 오디션을 잘 하시긴 했지만 긴장해서 많이 떠는 모습이 영화 속 학규 같아서 개인적으로 보기 좋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은 학규와 갓난이, 청이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다. 어쩌면 소리 자체가 주인공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배우 캐스팅 못지않게 음악 작업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음을 강조했다.
판소리 명창 이봉근은 영화에서 사라진 아내를 찾아나서는 소리꾼이자 소리 광대 ‘학규’역을 연기한다. 그는 “판소리를 전공하는 소리꾼 입장에서 봤을 때 ‘영화에 우리 판소리의 맛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았나’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번 영화 촬영을 하면서 윗대 분들께서 진짜 판소리를 했을 때 지레짐작으로 ‘이렇지 않았을까’를 몸소 느꼈고, 진짜 판소리가 가진 힘이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구나’를 체득했다”며 “정말 그 시절 사람으로 돌아갔던 거 같다. 재미있게 소리 한판 제대로 하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다”고 처음 배우로 연기한 소감을 전했다.
배우 이유리와 명창 이봉근. / 사진=양문숙 기자
이봉근은 “감독님이 ‘소리하는 게 아니라 말을 하듯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해달라’라고 말씀하셨다. 말을 하다 소리가 연결이 되려면 생활소리처럼 해야되는데, 그 간극을 좁히려 굉장히 노력했다”며 “그 과정에서 선배님들 조언, 박철민 선배님의 추임새 등 현장 스태프들이 많이 힘을 주셨다”고 덧붙였다.
학규의 사라진 아내 ‘간난’역에는 이유리가 열연을 펼친다. 간난은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기존에 했던 역할과 너무 달라서 새로운 관점에서 저를 캐스팅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고정관념을 벗어나게끔 해주신 것, 제 가능성을 봐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서 촬영 내내 행복했다”며 “제가 부족해서 ‘도드라져보이면 어떡할까’란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전 사극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고, 망가지고 그런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조선 팔도 다니면서 여행하듯 촬영하며 즐거웠었다”고 촬영 소감을 말했다.
김동완은 능청스러운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몰락 양반’역으로 출연한다. 그는 “사극영화를 너무 하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라 걱정은 없었다. 빨리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며 “저 스스로 연기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봉근씨의 모든 인생이 담긴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국악·음악에 대한 영화라서 관객들이 기대하고 오시면 만족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배우 김동완과 박철민. / 사진=양문숙 기자
박철민은 학규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북 치는 장단잽이 ‘대봉’역을 맡아 소리북에 도전했다. 그는 원래 장구와 꽹과리,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고. 그는 “추임새는 그때 그때 감정에 따라서 했던 것 같다. 따로 배우지는 않았으나 판소리를 가르쳐 준 선생님에게 ‘너의 추임새는 최고다’라는 말을 들었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그는 “인당수 장면을 찍고 그 편집 촬영본을 보고 많이 울었다, 심봉사 눈 뜨는 장면에서 장단을 치면서 눈물 흘렸었고, 봉근의 마지막 소리를 듣고 보조출연자들 스태프들 다 함께 울었다”며 “극장에서 관객 여러분도 이 장면 보면서 감동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한다. 우리 고전을 단순 옛날 이야기로 생각했지만 수백년 동안 사랑받아온 이유가 있구나를 생각하게 됐다. 정체되어있는 우리 소리가 이번 ‘소리꾼’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우리 곁에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소리, 노래였구나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시사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청이’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김하연 양에 대한 찬사도 쏟아 졌다. 조정래 감독은 “마지막 오디션에서 하연 양이 뚜벅뚜벅 걸어와서 섰는데 제 눈엔 청이가 와서 서있는 듯 했다. 대사하는데 영화가 보였다. 그 자체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며 “하연 양은 보배 같은 귀한 친구다. 현장에서는 ‘김하연 양과 함께 연기하는게 두렵다’고 할 정도로 하연 양의 열연과 열정이 이 영화를 살려준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조 감독은 작은 바람도 전했다. 그는 “우리 영화를 외국분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유리씨가 ‘이 영화는 완벽한 교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는 표현을 해주셔서 기뻤다”며 “판소리는 여러 가지 기원설이 있지만 기원설의 사실 유무를 떠나서 민족의 한과 흥, 모두가 그냥 눈빛만 봐도 아는 우리 민족 우수성을 이 영화를 통해서 해외 계신 분들도 스며들 듯이 울다가 웃어 주셨으면…해학도 있고 슬픔도 있고 같이 공유해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끝으로 조 감독은 “‘가족의 복원’을 주제로 ‘심청가’와 ‘춘향가가’ 텍스트로 있는데, 찍으면서 알 것 같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극장에서 저도 처음 완성본 보면서 너무 행복했고 그 안에서 심청가란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이제 조금 깨달음이 온 거 같다”며 “학규와 갓난이, 청이 얘기를 중심으로 했지만 심청가라는 이야기 자체가 심봉사가 눈을 뜬 건지, 내가 눈을 뜬 건지, 사람들이 눈을 뜬다는 것인지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됐다. 이제 알 것 같다. 우리네 삶 자체가 고통스럽고 고난에 가득 찬 삶인데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줬을 때 나에게 웃어주고 사랑을 받아준다는 것, 인간 세계에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닌가. 오늘 또 새롭게 느낀 연출 의도, 감독의 소감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형 뮤지컬, 판소리의 진수를 보여줄 ‘소리꾼’은 다음 달 1일 개봉한다.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