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 시장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는데, 확고한 오너 경영 체제가 아니었다면 글로벌 투자 경쟁에서 뒤처졌을지도 모릅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오너의 미래 투자 결정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기사에 쓰지 말아주세요.”
현대자동차그룹의 한 고위 임원이 “요즘 같은 시기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몇 달 전 한 이야기다. 기사화되는 게 부담스럽지만 기자에게 강조하고 싶었던 역설적인 이 말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며 떠오른 얘기이기도 하다.
정 수석부회장이 22일 기아차(000270) 연구개발본부 사장, 김걸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 사장, 박정국 현대모비스 사장, 권영수 LG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양사 수뇌부가 대거 모습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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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열리고 있는 시장인 만큼 기술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주행거리나 충전시간·가격경쟁력 등에서 어느 한 기업이 우위를 점하고 격차를 벌리면 후발 업체들로서는 따라잡기 힘들 수 있다. 현대차그룹과 LG화학,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따로 연구개발(R&D)을 하는 것보다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공유하면서 함께 역량을 집중하면 한국 업체들이 세계를 호령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재계 관계자는 “전기차와 배터리 사업이 한국 경제에 기여할 주요 산업으로 떠오르는 시기여서 각 대기업의 책임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며 “총수들이 직접 만나 논의하는 것 만큼 협력에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오너 경영의 책임성이 전기차·배터리 같은 신(新) 산업에서 그만큼 중요하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과 LG화학도 이날 총수들이 “미래 배터리 개발 방향성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전기차 분야에서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번 방문은 향후 전기차 전용 모델에 탑재될 차세대 고성능 배터리 개발 현황을 살펴보고 미래 배터리에 대한 개발 방향성을 공유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LG그룹 관계자도 “장수명 배터리와 리튬-황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미래 배터리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양사 간 협력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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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수석부회장은 머지않은 시기에 최태원 회장도 만나 배터리 사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과 이날 구 회장을 만난 데 이어 최 회장과의 회동까지 성사되면 현대차그룹을 축으로 한 4대 그룹 간 ‘배터리 동맹’이 현실화하게 된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LG화학뿐 아니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도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